시인 백석이 북한에서 펜을 꺾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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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해의 마지막 / 김연수

은 김연수의 장편소설이다. 시인 백석(1912~1996)의 일생 중 시를 쓰지 않았던 북한에서의 삶을 쓴 것이다. 백석은, 지금도 쉬 그러지 못하리 만치 민감하고 아름다운 모국어를 구사한 한국 최고의 시인이었다. ‘눈은 푹푹 나리고/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어디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푹푹 내리는 눈의 깊이, 응앙응앙 흰 당나귀의 울음소리는 전무후무한 표현이었다. '향토적 모더니스트'였던 백석은 그런 시인이었다.

백석은 북한에서 왜 시를 쓰지 않았던 것일까. 그것은 제대로 시를 쓸 수 없는 체제의 억압 때문이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강고하고 억압적인 창작 방침 탓이었다.

시 쓰지 않던 북한 거주 당시 삶 그려
체제에 짓눌린 천재 시인의 고통 담아

소설 속 인물 ‘기행’은 백석의 본명이다. ‘자기를 속일 수 있다면 글을 쓰면 되’(31쪽)지만 백석은 그럴 수 없었다. 그런 가운데 ‘음식 이름들, 옛 지명들, 사투리들… 폐허에 굴러다니는 벽돌 조각처럼 단어들은 점점 부서지고 있’(162쪽)었다. 그가 대신 취한 탈출구는 창작이 아니라 러시아어 번역이었다. 김연수는 백석의 러시아어 번역시를 읽고 그의 언어가 여전히 생생히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고, 그가 일부러 시를 쓰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했다고 한다.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어떤 시를 쓰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무엇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고차원적인 능력은 무엇도 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었다.’(85쪽) 이것은 역설적이고 도저하다. 백석은 시를 쓰지 않으면서 이런 내면을 키워갔을 거라고 작가는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백석이 북한에서 전혀 시를 쓰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때 원수님은 원쑤들에 대한 증오로’라고 이어지는, 현실의 수령을 호명한 시를 1956년에 썼고, 그러다가 1962년 완전히 절필했다고 한다. 원쑤 핏대 맹세 따위의 거친 언어들을 그는 더 이상 쓸 수 없었던 것이다.

백석은, 백두산이 있는 양강도의 삼수읍, 그중에서도 가장 오지인 독골에 보내진다. 거기서 그가 무엇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소설에서는 그가 그때 시를 썼다고 그리고 있다. 그는 일제강점기 때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시집 한 권을 내고는 시골에 들어가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고. 그 모양새는 전혀 다르나, 여하튼 그는 오지 시골에 보내져 거기서 아이들의 시를 보면서 살았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이루어졌던 셈이다.

그때 백석은 ‘시대에 좌절할지언정, 냉담하지 말고 지지치 말고’(172쪽)라는 자세를 견지했다. 백석은 밤에 난롯가에 홀로 앉아 자기 혼자만의 황홀한 시를 쓰고, 그리고 그 시를 난로에 넣어 불태웠다. 소설은 그렇게 그리고 있다. 그는 썼었기 때문에 시인이었고, 쓰지 않았기 때문에 시인이었다는 것이다. 김연수 지음/문학동네/248쪽/1만 35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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