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영원히 바다를 떠다녀도 좋겠다”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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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즐기기] 수영만에서 요트를

한 요트 동호인이 ‘블루 오션’ 뱃머리의 쿠션에 앉아 푸른 하늘과 바다를 가로지르는 광안대교를 바라보고 있다(위). 수영만 요트경기장 계류장 전경. 한 요트 동호인이 ‘블루 오션’ 뱃머리의 쿠션에 앉아 푸른 하늘과 바다를 가로지르는 광안대교를 바라보고 있다(위). 수영만 요트경기장 계류장 전경.

무더위가 시작됐다. 올여름에는 지난해보다 더 심한 폭염이 찾아올 거라고 한다. 더위가 찾아오면 때로는 시원한 탈출구가 필요하다. 그 탈출구 하나가 바다다. 바다에서 해수욕을 즐기는 것도 좋겠지만, 찾아보면 다른 즐거움도 있다. 부산 수영만 요트경기장에서 출발해 광안리 앞바다를 둘러보는 요트는 어떨까. 요즘 부산에 휴가를 즐기러 오는 외지인들의 인기 프로그램이다.


여름 무더위 이기는 시원한 ‘탈출구’

수영만 요트경기장 방파제 지나 바다로

끝이 보이지 않는 푸른 남해에 빠져

잔잔한 파도 느긋하게 즐기며 ‘힐링’


배들로 꽉 차 있는 계류장 모습. 배들로 꽉 차 있는 계류장 모습.

■푸른 하늘과 바닷속으로

오전부터 날씨가 심상치 않다. 부산 수영만 요트경기장에 도착했을 때, 자동차 계기판에 찍힌 온도는 33도다. 하늘에 떠다니는 하얀 뭉게구름 뒤로 크게 화가 난 것 같은 뜨거운 태양이 잔뜩 열을 뿜어낸다. 지난 며칠간 부산을 시원하게 했던 장마 구름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태양이 심술을 부리는 것과 비례해 바다는 더 푸르러 보인다. 여름철 유럽인들의 휴양지인 그리스 애기나섬을 둘러싼 에게해의 쪽빛 바다가 생각난다. 마치 무더위에 지친 파란 하늘과 구름도 바다에 풍덩 빠져 열기를 식히는 듯하다.

수영만 요트경기장 계류장에는 많은 배가 정박해 있다. 그중 귀여운 요트 한 척이 눈에 띈다. 요트 체험 업체인 ‘부산요트 매표소’를 운영하는 박성진 사장의 배로 길이 12m, 무게 8t짜리 ‘블루 오션’이다.

이 배를 타고 시원한 여름 바다를 즐기러 나갈 계획이다. 날렵해 보이는 배 앞부분에는 편안하게 앉아 바다 풍경을 즐기면서 일광욕도 할 수 있도록 안락한 쿠션이 설치돼 있다.

블루 오션은 천천히 계류장을 빠져나간다. 바람은 세지도 않고 약하지도 않아 멀미 없이 요트 체험을 하기에 적당하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오늘은 편안하고 안전한 해상 여행을 허락하는 모양이다.

요트경기장 방파제를 조심스럽게 빠져나가는 순간 눈이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푸른 남해가 요트를 향해 너른 두 팔을 벌리고 있다. 오른쪽으로는 광안대교가 시원하게 바다 위를 달린다.

블루 오션은 잔잔한 바다에 혹시 생채기라도 남길까, 가능하면 천천히 얌전하게 물을 가른다. 덕분에 배는 큰 흔들림 없이 바다를 달릴 수 있다. 멀리 오륙도가 보인다. 마침 미세먼지도 거의 없어 공기가 맑아 육지 끝에 매달린 듯한 작은 섬을 뚜렷이 볼 수 있다.

뱃머리에는 앙증맞은 쿠션이 하나 놓여 있다. 외로운 여행객이라면 혼자 앉을 수도 있고, 연인이라면 서로 등을 맞대 앉을 수도 있는 크기다. 쿠션은 앞쪽을 바라보고 있다. 블루 오션에 함께 승선한 일행이 쿠션에 앉아 시원한 바닷바람과 뜨거운 태양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일행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쿠션에 앉아 본다. 배에 서서 바라보는 바다와 쿠션에 앉아 보는 바다의 느낌은 완전히 다르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의 장면이 떠오른다. 주인공 척 놀랜드가 섬에서 탈출해 뗏목을 타고 다닐 때 바라본 바다의 느낌이 이런 것이었을까. 이대로 영원히 바다를 떠다녀도 괜찮겠다는 엉뚱한 생각에 잠시 사로잡힌다. 물론 그럴 수는 없겠지만.


부산요트 매표소의 블루 오션. 부산요트 매표소의 블루 오션.

■광안대교 지나는 요트 풍경 이국적

블루 오션은 광안대교를 오른쪽에 두고 느긋하게 달린다. 다리 위로는 마치 성냥갑만 하게 보이는 자동차들이 질주하고 있다. 한가로운 바다에서 바라보는 바쁜 세상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진다.

광안대교와 나란히 달리던 블루 오션은 방향을 틀어 다리 밑으로 들어간다. 비슷한 크기의 다른 요트 한 척이 먼저 다리 아래를 지나간다. 배 밖으로 나와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날씨가 무더워 에어컨을 틀어놓고 선실에 앉아 있는 모양이다. 배 두 척은 다 한가롭다.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잔잔한 파도를 즐긴다.

블루 오션은 광안대교 교각을 지탱하는 기단 구조물인 앵커 블록 곁을 지난다. 멀리서는 작아 보이지만, 세로 86m, 세로 76m, 높이 5m여서 어지간한 학교 운동장보다 크다. 22년 전 광안대교 공사를 진행 중일 때 건축 전문가 등과 함께 앵커블록 안으로 들어가 본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요트를 타고 올려다보는 광안대교는 광안리해수욕장에서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배경으로 활용할 때보다 엄청나게 웅장해 보인다.

광안대교 아래를 지난 블루 오션은 광안리 해수욕장을 향해 천천히 다가간다. 해수욕장과 주변에는 수평선을 따라 온갖 종류의 높고 낮은 건축물이 들어서 있다. 안전을 위해 해수욕장 근처로는 다가가지 않는다. 멀리서 시원한 풍경을 둘러보고 올 뿐이다.

배는 이곳에서 잠시 멈춘다. 해수욕장을 오가는 사람들이 개미처럼 보인다. 아련히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도시가 뿜어내는 무더운 열기인 모양이다. 선수의 쿠션에 앉아 해수욕장을 지그시 바라본다. 편안하고 푸근하다.

블루 오션은 방향을 180도 돌려 다시 광안대교 아래로 향한다. 왼쪽에는 수영만 친수공간이 보인다. 조금 전 해수욕장으로 먼저 들어갔던 다른 요트가 다리 밑을 먼저 지나고 있다. 광안대교 아래를 지나는 요트의 풍경은 매우 낯설고 이국적이다.

블루 오션은 1시간가량 이어진 항해를 마치고 다시 수영만 요트계류장으로 돌아간다. 나올 때는 보이지 않던 마린시티가 하늘을 가리고 서 있다. 사람이 사는 아파트를 보면서, 성경에 나오는 바벨탑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그 뒤로 동백섬이 어깨를 움츠린 채, 마치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인다.

블루 오션은 방파제를 조심스럽게 지나 계류장으로 복귀한다. 다른 요트는 마치 무더위를 먹은 사람처럼 축 처져 닻을 내리고 앉아 있다. 반면 방금 시원한 바다 구경을 다녀온 블루 오션은 방금 물에서 나온 어린아이처럼 신난 표정으로 제 자리로 들어간다. 곁에 정박해 있는 요트에 방금 다녀온 바다 이야기를 해주려는 듯 입에는 이야깃거리가 가득하다. 글·사진=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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