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차 농사로 깨우치는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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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훈 시인 ‘내가 낸 산길’

차 농사 지으며 16번째 시집을 낸 조해훈 시인. 조해훈 제공

조해훈 시인은 2017년 봄부터 지리산 화개골 쌍계사 위 목압마을에서 녹차 농사를 짓고 있다. 시인은 가장 높은 곳의 차산에서 낫 한 자루를 사용하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녹차를 재배한다.

조 시인의 16번째 시집 <내가 낸 산길>(역락)에는 지리산에서 녹차 농사를 짓는 일상이 고스란히 담겼다. 50편의 산문시는 화개골의 자연, 주민의 생활 모습, 계절의 변화,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 관련 이야기를 형상화했다. 각 시편에 어울리는 문진우 사진가의 흑백사진도 실렸다.

지리산서 녹차 농사 짓는 시인
허리 끊어질 듯한 고행의 시편

시인은 4월에서 6월까지 차를 따는 시기를 제외하곤 억새, 가시, 잡풀을 낫으로 일일이 베어 내야 한다. 그것은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픈’ 고행과도 같다. ‘이렇게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픈 적은 없었다 다섯 번째 덖어 덕석에 뜨거운 차를 올려 비비곤 허리 잡고 잠시 쉰다 밤, 초록의 찻잎 갖고 마술을 부리는 중이니’(‘나는 다부다’ 중).

고행은 이어진다. 시인은 억새를 발견하곤 ‘흠칫 놀라 베어 내려고 왼손으로 잡고 있던 가시를 나도 모르게 쭈우욱 훑어버렸으니 아야, 실장갑 꼈다지만 가시들이 손에 그대로 다 박혀버렸다’고 토로한다. 손끝에 쓰라린 아픔이 전해지는 듯하다.

시인은 선방의 수행자 같은 향기를 뿜어낸다. ‘차산에서 일을 하고 천천히 내려오다 뒤돌아본다 한 사람만 다니는 실뱀 같은 산길이 꼬불꼬불 나를 따라 내려오고 있다’(‘내가 낸 산길’ 중).

시인은 지리산 화개골의 불행한 역사를 마치 발굴하듯 소환한다. ‘여순사건 한국전쟁으로 이곳에서 눈 감긴 사람들 그들과 함께 사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왜 자꾸 그들을 이렇게 찾아나서는가’(‘삼정마을에서’ 중).

시인은 세상에 밀려나고 눈길 받지 못하는 생명에 대한 경외심도 드러낸다. ‘세상의 생명은 모두 각자의 가치를 지닌다 내 키의 두 배가 넘는 차산의 억새도 마찬가지이니 (중략) 너흰들 낫으로 자르면 육체의 아픔뿐 아니라 마음의 상처가 없을까만’(‘억새를 잘라내며’ 중).

김상훈 기자 ne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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