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초 삶 담은 대하소설 마무리할 수 있었으면…"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이득수 시인… 말기암 투병하며 책 펴내

최근 포토에세이 (인타임)를 낸 이득수(70) 시인은 낭떠러지 앞에 서 있다. 그는 말기 암 환자다.

부산시공무원문인회 ‘징검다리’ 회장도 맡았던 그는 공직을 퇴임하고 고향 언양(울주군 상북면 명촌리)에 2015년 귀촌해 소박한 삶을 시작한 지 불과 몇 달 만에 급성간암으로 쓰러졌다.

에세이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귀촌한 고향 풍경사진 함께 담아
"모두 내려놓으니 글쓰기 더 쉬워져"

“마을회의를 마치고 나오다가 옆구리가 구멍 난 것처럼 아프면서 쓰러졌지요.” 2016년 초, 내출혈이었다. “퇴원할 때 의사가 이제 맛있는 음식 마음껏 드시라고 해요.” 알고 보니 6개월을 넘기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마누라가 자꾸 울어요. 믿기지 않았어요.” 한 줌의 시간밖에 남지 않은, 어쩔 수 없는 그때 모든 걸 내려놓자 산과 들과 하늘이 아름답게 쏟아져 들어왔다. 생은 역설투성이였다. 이제 삶이 뭔지, 글이 뭔지 조금은 알듯하여 글쓰기가 한결 쉬워졌다.

“한 계절을 채울 수 있을까 하면서 사진을 찍고 짧은 글을 써서 ‘명촌리 사계’란 제목을 달아 카톡으로 지인들에게 전했어요.” 살아 있다는 안부였다. 그러던 것이 4년을 넘겼다. 얼마 전 글은 1000편을 넘겼다. 그중에 가려 묶은 것이 이번 책이다.

그러나 결코 그냥 지나온 시간이 아니다. 발병 이듬해인 2017년 또 갈비뼈 쪽에 암이 재발했다. 두 번째 수술로 갈비뼈 세 개를 덜어냈다. 그런데 또 암이 이곳저곳으로 번져 이제 손쓸 수 없는 지경이다. 한 달에 수백만 원 하는 알약을 먹는 것 외에도 의학적으로 모든 ‘카드’를 다 썼다. “첫 발병 이후 4년을 살았는데 의사들이 5년 살 확률이 3%라고 해요.” 좋은 공기 마시고, 둘도 없는 단짝 반려견 ‘마초’와 1~2시간 산책을 하고, 밥 잘 먹으면서 ‘거의 없는 확률의 기적’을 살고 있다.

“돌이켜 보면 저 먼 20대 때엔 세상의 우울, 슬픔을 다 짊어졌지요. 공무원 6개월 월급을 모아도, 힘들게 들어간 동아대 야간부 학비를 대기 힘들었어요. 열다섯 살 때 김동리의 ‘황토기’를 읽고 소설가가 되겠다고 결심했으나 신춘문예에 번번이 낙방했고요. 이런저런 일, 일일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지요.” 그런 고난과 좌절도 결국 이겨냈던 그다.

“저는 민초, 농사꾼 자식입니다. 끈질기고 강인한 생명력이 제 피 속에 흐르고 있지요. 지금껏 이렇게 생명을 잇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해요.”

그의 선친은 머슴살이와 소작농, 언양 장날 난전의 장사꾼으로 살면서 농악 상쇠와 장례식의 선소리꾼으로 걸쭉한 막걸리 한 사발을 마시고 언양 사투리를 섞어 사설을 읊곤 했다고 한다. 그는 언양 사투리를 수천 년 면면히 내려온 ‘반구대 언어’라고 생각한다.

“반구대 암각화 고래잡이들의 그 말은 신불산·가지산 아래 농사짓고 언양 장터에서 난전을 펴고 살던 민초들의 말, 언양 사투리로 그대로 이어졌다고 보는 거지요.”

오래전 써놓은 소설로 2018년 한국해양재단의 해양문학상 대상을 수상하기도 한 그는 필생의 작업을 말했다.

“200자 원고지 4만 장 분량으로 대하소설 ‘신불산’ 초고를 아프기 전에 집필해 놨는데 그것을 지금 퇴고 중입니다. ‘반구대 암각화의 후예’로서 언양 민초들의 삶을 담은 이 소설을 꼭 마무리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