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조망 너머에도 평화를… 강원도 DMZ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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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전망대에서 바라본 금성천과 북한 쪽 DMZ 일대. 여름에는 북한군이 목탄 트럭을 몰고 와 금성천에서 헤엄을 즐긴다.


강원도에 특별한 여행을 다녀왔다. ‘2020년 강원도 특별여행주간 DMZ 팸투어’였다. 팸투어는 ‘사전 답사 여행’이다. 지난해 10월 돼지 열병과 올해 코로나19 때문에 완전히 닫힌 DMZ 일대를 둘러보고 여행 재개 여부를 살펴보는 행사였다.


금성천·북쪽 DMZ 내려다보이는 칠성전망대
분쟁지역 탄피 모아 만든 ‘세계평화의 종’
울진 이재민들의 눈물겨운 정착지 ‘마현리’
‘백마고지’ 너머 북한 땅 손에 잡힐 듯 한눈에


■화천 백암산 칠성전망대


세계평화의 종(위)과 평화의 댐.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 녘에/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먼 고향 초동 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한명희 시 ‘비목’ 중에서).’

버스는 첩첩산중을 기어가듯 올라간다. 미늘이 꽂힌 철조망이 도로를 따라 달린다. 철조망에는 섬뜩한 글씨가 적힌 천 조각이 휘날린다. ‘지뢰 조심.’

버스가 향하는 곳은 강원도 화천군 백암산 칠성전망대다.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는 긴장의 비무장지대(DMZ)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다. 칠성전망대 일대는 6·25 한국전쟁 때 백암산 전투와 4·25고지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휴전협정이 체결되기 전날까지 이곳에서는 총탄과 포탄이 날아다녔다.



너른 공터에 주차한 버스에서 내려 1km가량 걸어 올라간다. 남북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요즘 상황에서 관광버스가 오가는 모습을 북측에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문화해설사는 설명한다.



화천은 가곡 ‘비목’의 고향이다. 비목 공원도 있다. 작사가 한명희 씨는 1962년 ROTC 2기로 백암산 지역 군부대에 근무했다. 그는 수색에 나섰다가 버려진 카빈 소총과 돌무덤을 발견했다. 구멍 난 철모가 걸린 나무 비석도 있었다. 한 씨는 전역한 뒤 TBC 동양방송에 프로듀서로 입사했다. 그는 회사에서 당직을 서면서 백암산에서 발견한 철모를 떠올렸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시가 ‘비목’이었다.

칠성전망대에는 태극기와 유엔기가 펄럭이고 있다. 두 깃발 뒤로 초소가 보이고, 초소를 따라 높은 철조망이 이어져 있다. 철조망 너머로 나무가 우거진 산이 여러 개 보인다. 산 너머로 구불구불하게 흐르는 금성천이 눈에 들어온다. 금성천은 북한 금강산에서 흘려내려 파로호에 들어서 양구를 만나고, 춘천에서는 소양호를 만나고, 나중에는 남한강과 합쳐지는 북한강의 지류다. 조선시대에는 금강산에서 자른 금강송을 금성천으로 실어 날라 서울 궁궐을 짓거나 보수하는 데 사용했다.


세계평화의 종(위)과 평화의 댐.


강원도 DMZ 전문여행사인 ‘새영남여행사’ 정경해 사장은 “금성천 너머로도 산이 보인다. 숲이 덜 무성한 곳이 북한 쪽 DMZ다. 안개에 싸인 북한 조함산에서 북한 군인들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칠성전망대는 지난해 10월 이후 폐쇄됐다. 남북관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돼지 열병 때문이다. 이곳만이 아니다. 강원도의 모든 최전방 여행이 다 봉쇄됐다. 강원도에서 돼지열병을 봉쇄하지 못하면 금세 전국으로 퍼져 우리나라 돼지는 전멸할지도 모른다.

금성천은 그야말로 지척이다. 전망대에서 걸어가면 5분이면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북한군 병사들은 여름이면 목탄차를 타고 와 물놀이를 즐긴다고 한다. 그들이 물을 철벅이는 소리가 귀에 맴돈다. 어린 시절 고향의 강에서 친구들과 물놀이 하던 생각이 난다. 그것과 무엇이 다르랴.

버스는 칠성전망대에서 내려와 평화의 댐으로 달린다. 남북 분단과 대립 상황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다. 더하여 북한을 보는 시각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 남측의 내부 갈등을 그대로 담고 있는 곳이다,

평화의 댐은 북한 임랑댐 건설에 맞서 대응책으로 만든 댐이다. 임랑댐이 고의나 사고로 붕괴하면 강원도는 물론 수도 서울이 물바다가 된다는 게 건설 이유였다. 여러 논란 끝에 평화의 댐은 5공화국 때 착공했고, 국민의 정부를 거쳐 참여정부 때 완성됐다.

평화의 댐 한쪽에는 ‘세계평화의 종’이 세워져 있다. 세계 각국의 분쟁지역에서 보낸 탄피를 모아 만든 미완성의 종이다. 종은 9999관으로 만들었는데 평화통일이 이뤄지는 날 마지막 1관을 보태 완성할 계획이다. 눈에 띄는 글이 있다. 1997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조디 윌리엄스가 세계평화의 종에 보낸 글이다.

‘단지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것만이 평화가 아님을 인식할 때 진정한 평화가 찾아올 거라 믿습니다. 평화는 국가를 초월한 사회경제적 정의 실현을 통해 이룰 수 있습니다.’



■철원 민통선 마을

‘월하리를 지나/대마리 가는 길/철조망 지뢰밭에서는/가을꽃이 피고 있다//(중략)//저 꽃의 씨앗들은/어떤 지뢰 위에서/뿌리내리고/가시철망에 찢긴 가슴으로/꽃을 피워야 하는 걸까(철원시인 정춘근 ‘지뢰꽃’ 중에서).’

금강산 전기철도 교량으로 가는 길에 검문소를 지난다. 검문 과정은 철저하다. 모든 차량 승객은 버스에서 내려야 한다. 돼지 열병을 막기 위해 설치한 방역 시설에서 모두 방역을 받아야 한다. 일부에서 너무 느리다고 불만이 터져 나오지만, 원칙을 지키는 건 중요하다. 젊은 군인들의 원칙주의가 오히려 반갑다.

버스가 달리는 도로 주변 곳곳에 ‘지뢰 조심’이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숲이 우거진 곳은 대부분 지뢰가 묻혀 있을 수 있는 위험 지역이다. 북한노동당사 앞에 세워진 ‘지뢰꽃’ 시비가 새삼 가슴을 파고든다.

‘마현리’라는 안내판이 나온다. 이 마을이 생겨난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난다. 가난했던 우리나라의 현대사가 담긴 스토리다. 1959년 우리나라 역사상 최강이었다는 사하라 태풍이 추석을 며칠 앞두고 경북 울진을 강타했다. 초토화된 마을은 한두 곳이 아니었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철원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다. 정부는 울진 이재민을 이곳으로 이주시켰다.

이재민들이 간 곳에는 집 한 채 없었다. 10월 무렵이어서 제법 추웠다. 다들 함께 죽자고 울부짖었다. 그때부터 살길을 찾기 위한 이재민들의 눈물겨운 정착기가 시작됐다. 주민들은 밭을 일구다 건져낸 지뢰를 숨겨 외지에 갖고 가서 고철로 팔아 먹거리를 사 왔다. 마현리는 지금은 부자 마을이다. 인삼 등 농작물을 많이 길러 소득이 높다.

철원에는 한국전쟁과 관련한 유적이 많다.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백마고지를 향해 걸음을 옮긴다. 백마고지 전적비가 보인다. 수많은 사망자 명단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6시 25분에 시간이 멈춘 6·25 시계도 있다. 전적비를 지나면 DMZ 평화의 길이다. 바로 앞에 백마고지가 보인다. 그 너머 희미한 미세먼지에 감춰진 게 북한 영토다. 손에 바로 잡힐 듯하다. 하지만 아직은 갈 수 없는 곳이다. 취재 협조/강원도, 한국관광공사, 새영남여행사.

글·사진=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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