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루트 삼킨 초대형 폭발 수천 명 사상 “원자폭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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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연안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서 4일(현지시간) 초대형 폭발 참사가 일어났다. 현재까지 100명 이상의 사망자와 4000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정확한 참사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베이루트 항구 창고에 별도의 안전장치 없이 장기간 대량으로 적재됐던 인화성 물질 질산암모늄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관리 소홀에 따른 사고가 아니겠느냐는 관측이 많지만, 질산암모늄 보관 사실을 알고 있는 외부세력의 개입 가능성도 배제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항구 창고서 섬광 연이은 폭발음
몇 초 만에 시내 초토화 아비규환
100여 명 사망, 4000여 명 부상
방치 수천t 질산암모늄 폭발 추정
외부세력 개입 가능성 배제 못 해
베이루트 2주간 비상사태 선포

■베이루트 항구서 두차례 ‘굉음’

이날 오후 6시께 베이루트 항구에서 진한 회색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유포된 동영상을 보면 항구의 한 창고에서 불이 나 여기서 뿜어져 나온 연기 사이로 마치 폭죽이 터지듯 섬광이 번쩍였다.

평범한 화재처럼 보였던 이 불은 바로 옆 다른 창고를 달궜고 연기가 회색에서 암적색으로 바뀌더니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터져버렸다. 원자폭탄이 터진 것처럼 구형의 흰 구름이 순식간에 부풀어 올라 상승기류를 타고 버섯 모양으로 하늘로 치솟았고 폭발의 충격파는 초고속으로 베이루트 시내를 삼켜버렸다.

현지 보도와 SNS로 전달된 사진, 동영상에는 단 몇 초 만에 초토화된 베이루트 시내 중심가의 모습이 담겼다. 충격파와 열파 탓에 타버린 자동차는 뒤집혔고 붕괴한 건물도 셀 수 없을 정도였다. 10㎞ 거리에 있는 건물의 유리창까지 박살났으며, 미셸 아운 레바논 대통령 관저와 사드 하리리 전 총리의 거주지도 손상됐다고 미국 CNN방송이 전했다.

한 목격자는 로이터통신에 “베이루트 하늘 위로 불덩이와 연기가 피어올랐고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소리를 지르고 뛰었다”고 말했다. 항구와 가까운 도로와 공터에 피로 범벅된 시신이 널브러진 동영상도 SNS에 게시됐다. 요르단 지진관측소는 이날 폭발이 규모 4.5의 지진과 맞먹는다고 추정했다.

베이루트 항구 근처에 산다는 한 남성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포칼립스(세상의 종말) 같았다. 나는 목숨을 간신히 건졌지만 다른 사람의 생사는 지금 알 길이 없다. 사방이 피투성이”라고 적었다.

현지 병원에는 부상자들이 몰려들며 응급실들이 가득 찼다. 베이루트의 주요 병원 ‘호텔 듀’는 500명 이상의 부상자를 치료 중이며 환자를 추가로 수용하지 못할 지경이라고 현지 방송이 보도했다. 일부 환자들은 유리 파편에 맞았거나 팔다리가 부러졌으며, 의식을 잃은 사람들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폭발로 유독 가스가 퍼지고 있어 어린이와 노약자는 베이루트를 탈출해야 한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베이루트 시장은 스카이뉴스 아라비아 채널과 생방송 인터뷰에서 “(원자폭탄이 투하된) 히로시마에서 일어난 폭발 같았다. 어떻게 복구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다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하산 디아브 레바논 총리는 ‘애도의 날’을 선포했다. 디아브 총리는 텔레비전 연설에서 “이번 재앙에 책임 있는 자들은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창고 속 질산암모늄 폭발?

레바논 당국은 베이루트 항구 창고에 장기간 적재된 인화성 물질 질산암모늄에서 폭발이 일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농업용 비료인 질산암모늄은 가연성 물질과 닿으면 쉽게 폭발하는 성질을 갖고 있어 화약 등 무기 제조의 원료로도 사용된다.

디아브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폭발이 발생한 베이루트 항구 창고에는 약 2750t의 질산암모늄이 아무런 안전조치 없이 6년간 보관돼 있었다”면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화학물질 관리 사고에 무게를 두는 뉘앙스다. 미셸 아운 레바논 대통령은 베이루트에 2주간의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비상 국무회의를 소집했다.

이와 함께 라피크 하리리 전 레바논 총리 암살 사건에 대한 유엔 특별재판소의 판결을 불과 사흘 앞두고 발생했다는 점도 주목된다. 오는 7일 유엔 특별재판소는 2005년 하리리 전 총리 암살을 주도한 혐의로,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 대원 4명에 대한 판결을 내릴 예정이다.

김경희 기자 miso@busan.com·일부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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