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수의 지금 여기] 땅과 집, 왜곡된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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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앞둔 평범한 직장인 남성 A 씨. 내 집 마련이 꿈이지만 재계약할 때마다 오르는 전세금조차 버겁다. 결혼 후에도 대출을 받아 상승분을 겨우 메우는데, <이상한 나라 앨리스>의 흰 토끼가 떠오른다. 아무리 쫓아가도 늘 저만치 가 있는 토끼 말이다. 세입자로서 자괴감도 든다. 집주인 앞에서는 왠지 상하 관계의 아랫사람처럼 움츠러드는 거다. 아, 자본주의란 정녕 이런 것인가, 실감했다고 한다. 그는 이후 아파트 청약 시장을 기웃거린다. 도대체 왜, 우리는 이런 현실을 맞게 된 걸까.

땅의 용도, 농지에서 점점 변화
담보대출 수단되면서 투기 대상으로
 
불평등 심화 핵심 요인은 부동산
청년계층 ‘주거 약자’ 암울한 한국
 
최근 정부 부동산 개혁 정책 미흡
수도권 공급 확대 집중 개탄스러워

산업혁명으로 자본주의를 꽃피운 영국의 역사를 돌아본다. 16세기 말, 봉건 영주들이 너도나도 목축업에 뛰어들었다. 자신의 넓은 소유지에서 농사짓는 것보다 양들을 길러 양털을 뽑는 게 훨씬 이득이 컸기 때문이다. 모직물 공업이 팽창해 양털 가격이 치솟던 때였다. 한곳에 대대로 정착해 농업으로 먹고살던 소작농들은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이를 ‘인클로저(enclosure·울타리 두르기)’라고 한다. <유토피아>를 쓴 토머스 모어가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했던 표현이 바로 그것이다. 토지에서 쫓겨난 농민들은 도시로 흘러들었고, 날품을 팔아 연명하는 값싼 임시 노동자 신세를 면치 못했다. 산업혁명의 번영은 인클로저가 낳은 무시무시한 희생의 대가를 딛고 선 것이었다.

인클로저의 핵심은 공유지의 사유화다. 사유재산제는 물론 자유주의의 이념적 바탕이지만, 땅을 소유하는 것에 대해서는 의견이 달랐다. 생산에 아무런 기여도 없는 자들이 요지에 가진 땅으로 남들이 일궈놓은 부의 상당 부분을 지대 형태로 가져가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고 여겼다. 근대 자본주의의 소유 개념을 정리한 존 로크의 견해는, ‘공유지인 토지가 배타적 사적 소유로 전환될 때 타인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토지를 모든 사람이 이용하는 데 불편이 없도록 하려면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17세기, 그것도 보수 우파의 입에서 이런 말들이 나왔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땅은 식량을 얻는 농지에서 자본주의 산업 생산 공간으로, 가족이 함께 사는 거주지라는 소비재로, 결국에는 투기적 대상의 원천으로 변모하고 말았다. 1980년대 활성화한 주택담보대출이 중대한 변곡점이 된다. 은행이 생산활동 투자보다 집이나 부동산 대출에 따른 수익에 눈독을 들인 탓이다. 집값을 올리고 주택 품귀 현상을 낳는 ‘주거 자본주의’는 그렇게 출발했다.(조시 라이언-콜린스 외 공저 <집과 땅값의 경제학>) 이게 지구의 공적 자원으로 여겨졌던 땅의 변천사다. 재산으로 대물림된 그것은 전체 경제의 성장보다 더 빨리 자본을 늘렸다. 경제성장의 과실을 땅과 부동산 소유자들이 독점하는 형태로 나아간 것이다.

대한민국은 이 현상이 더욱 심각한 나라에 속한다.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주요 원인은 땅과 집이다. 집 없는 대다수 사람들은 최저 소득 수준의 월급으로 한 달 수십만 원 하는 고시원비를 감내한다. 편의점에서 3000원짜리 먹을 것으로 끼니를 때우는 이도 적지 않다. 원롬, 오피스텔에 살면서 저축의 꿈도, 결혼의 꿈도 꾸지 못하는 것은 치솟는 주거비 때문이다. ‘주거 약자’인 청년계층의 발목을 잡는 사회는 실로 암울한 사회다.

지금 땅과 집의 수혜자들은 이전처럼 땅을 가진 극소수의 귀족이 아니라 숱하게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임차인이 임대인으로 전환되면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일까. 아니, 모든 임차인이 다 임대인이 될 수 있을까. 주택을 충분히 공급하면 해소되는 문제일까.

양극화 문제는 결코 간단치 않다. 최근 부동산 가격을 잡으려는 정부 정책이 국민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아야 마땅한데, 전혀 그렇지 않다. 많은 국민들도 주택 소유자가 되어 부동산 가격 상승에 의한 미래 자산 증가를 기대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최근 임대차보호법 설문조사 결과, 반대(50%) 여론이 찬성(44%)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반발은 최저임금 인상 때도 충분히 겪은 바 있다. 노동자를 고용한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성난 목소리가 그것이다.

소득 양극화는 복잡하고 거대한 구조를 지닌다. 여러 사회집단과 관계·제도·문화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하나의 처방, 부분적 수술만으로 성과를 거두기는 힘들다. 뚜렷한 방향성을 갖고 모든 요소에 맞는 다양한 종류의 정책들이 함께 추진돼야 한다. 무엇보다 개탄스러운 것은 현 정부가 수도권 집중 완화에 뜻이 없다는 점이다. 엊그제 부동산 문제 해결책으로 내놓은 것이 다시 수도권 고밀도 개발이다. 이런 근시안적 정책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준비 없이 허술하게 나섰다가 혼란만 자초한 뒤 후퇴를 겪는 현상, 언제까지 반복할 텐가.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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