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마기가 오버핏 코트로… 한복의 ‘힙한’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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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아름다운 옷을 어디서 살 수 있나요? 저도 입고 싶어요” “색감이 너무 예쁜 옷이네요.” “혹시 저 옷이 한복이라고 부르는 옷인가요? 아니면 기모노?”

부산 오고파한복 김민지 디자이너
신윤복 ‘월하정인’ 영감 얻은 원피스
단속곳으로 만드 와이드 팬츠 등
한복 재해석 독창적인 옷 만들어

달의·하플리 등 ‘젊은’ 한복 브랜드
온라인 마켓·펀딩 사이트 등 인기

BTS 슈가와 블랙핑크가 뮤직비디오에서 한복을 입고 등장하면서 한복을 향한 세계인들의 관심이 폭발했다. 뮤직비디오 댓글의 상당수가 옷에 대한 칭찬이다. 실제로 블랙핑크의 한복을 만든 업체로 외국에서 구매 문의가 쏟아지고 있단다.

그러나 정작 한국에선 아직도 많은 이들이 한복은 일상생활에서 입기 불편하다고 생각한다. 명절이나 특별한 행사에나 입을 수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일상에서 자주 입자고 만든 생활한복들은 디자인이 촌스럽다고 무시당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모르는 사이 한복의 놀라운 변신은 이미 시작됐다. 젊은 디자이너들은 한복을 응용해 운동할 때 입는 트레이닝복부터 코트 재킷 원피스 스커트 팬츠까지 다양한 디자인의 옷들을 선보이고 있다.



입고 싶은 명품, 한복

부산진시장 오고파한복의 김민지 디자이너. 김 디자이너는 2016년 한복진흥센터가 주최한 ‘한디자인, 입고 싶은 우리 옷’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최근 패션 경향을 반영해 생활에서 입을 수 있는 새로운 한복을 찾는 이 공모전에서 김 디자이너는 신윤복의 그림 ‘월하정인’에서 영감을 얻은 원피스로 최고상을 받았다.

김 디자이너는 패션 관련 과가 아니라 공대에서 환경공학을 공부한 후 중학교에서 과학실 전담 교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녀의 대상이 더욱 화제가 된 이유이다. 하지만 한복에 대한 김 디자이너의 뿌리는 꽤 깊다. 외할머니, 어머니가 대대로 한복을 만들어 왔고 꼬맹이 시절부터 외할머니, 어머니의 한복점은 그녀가 가장 좋아하던 놀이터였다.

“저 역시도 외할머니, 어머니처럼 한복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힘든 길이라며 어머니가 강하게 반대하셨어요. 미련을 버릴 수가 없어 직장에 다니며 퇴근 후면 한밤중까지 패션학원에서 옷 만드는 걸 배웠어요. 대상을 받으며 비로소 어머니에게 인정받았고 3대째 이어가는 한복 디자이너가 될 수 있었죠.”

이후 독일에서 전시회도 열고 몇 번의 패션쇼를 통해 입고 싶은 명품 옷, 세련된 한복 패션을 계속 선보였다. 사람들이 김 디자이너에게 옷을 부탁하기 시작했다.

김 디자이너는 한복은 색감이나 디자인적인 면에서 변화시킬 수 있는 요소가 많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기성복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독창적인 옷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김 디자이너의 손끝에서 단속곳은 와이드 팬츠로, 두루마기는 코트로 변신했다. 넉넉한 품으로 시원하며 편한 삼베 원피스는 여름에 고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상품이다.

요즘 김 디자이너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 중이다. 일주일에 1번씩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K공예를 가르치고 있다. K공예라는 말도 김 디자이너가 만들어낸 단어이다. 한복부터 규방 공예, 누빔 옷, 한지 공예 등을 만들어 보며 아이들에게 우리 문화의 가치를 알려주고 있다.



발칙한 도전, 현실이 되다

새로운 상품의 반응을 알아보는 마켓, 펀딩 사이트에서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상품군이 한복이다. 젊은 디자이너들이 한복을 바탕으로 선보이는 옷들이 목표의 수십 배부터 수백 배의 금액을 확보하기도 한다.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와디즈’에서 누적펀딩액 4억 원을 달성한 브랜드 하플리. 한복(hanbok)의 H와 적용하다(Apply)라는 단어를 붙여 만든 하플리는, ‘한복을 라이프스타일에 적용한다’라는 뜻을 가질 정도로 브랜드 정체성을 한복에 두고 있다.

하플리 이지언 대표는 “한복의 여유로운 품, 동정, 깃 등에서 영감을 받아 멋스러운 옷을 만들고 있다”며 “젊은 세대들에겐 오히려 옛날의 것들이 더욱 더 새롭고 독창적으로 다가온다. 한국인으로서 자기다움을 내세울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소개했다.

하플리의 조선 호랑이 재킷, 호담국 한복 셔츠, 일월오봉도 트렌치코트, 단청 후드 셔츠, 모란꽃 치마 등이 대표 인기상품으로 꼽히고 있다.

자매 디자이너가 만드는 한복 브랜드 ‘달의(조선의 달이 머무는 옷)’도 펀딩 사이트에서 엄청난 반응을 얻으며 인기를 얻고 있다. 달의의 박혜림 대표는 “무형문화재였던 이모할아버지가 늘 한복을 입고 있었고,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일했던 외삼촌은 어릴 때부터 전시가 있을 때마다 데리고 갔다. 자연스럽게 한복의 아름다움을 익혔고, 한복을 활용한 옷을 제대로 만들고 싶어 한·중·일 복식을 공부했다”고 소개했다.

박 대표는 한복이 가진 역사적 배경과 자료, 한복의 요소들이 많은 영감을 준다고 했다. 과거 남성들이 관복으로 입었던 옷을 여성 원피스로 변신시키기도 하고, 소창의(사대부가 활을 쏘거나 야외 활동 시 입던 옷)를 트렌치코트로 바꾸기도 했다.

특히 달의는 새로운 옷을 소개할 때 역사적 배경을 상세하게 설명해 한복에 뿌리를 둔 옷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최근 펀딩 사이트에서 선보인 ‘돌아온 조선왕실의 옷-덕혜옹주 벚꽃철릭원피스&이우왕자 한복 두루마기 수트’는 조선왕실의 비극과 항일의 역사를 소개해 남다른 울림을 전하며 많은 이들의 선택을 받기도 했다.

젊은 한복 디자이너들은 공통적으로 “유행을 선도할 수 있는 옷으로 한복이 가진 가능성은 대단하다. 아름답고 신선한 디자인의 한복들은 계속 나올 것 같다”고 전한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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