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현의 사람 사는 경제] 착한 전세, 나쁜 월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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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장





국회에서 난데없이 누가 진짜인지 검증하는 소란이 일어났다. 여야 국회의원들이 서로 내가 진짜 임차인이라고 자기검증에 나선 일 이야기다. 보증금이 얼마고 월세가 얼마라는 고백까지 나왔으니 다음 분에게서는 무슨 이야기가 더 나올지 궁금하다. 나는 임차인이라고 간곡하게 울먹였던 분이 알고 봤더니 자기 소유 아파트는 따로 챙겨 둔 알짜 임대인이더라는 이야기는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나는 이분의 연설 가운데 4년 후에는 꼼짝없이 월세 살게 될 것이 걱정이라는 말이 가슴에 남는다. 그런 주장의 근거는 잠시 접어두더라도, 과연 전세 살던 사람이 월세 살게 되면 잘못된 일인지 궁금하다. 경제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이등 국민이다가 삼등 국민이 되기라도 한 것인지, 아니면 혹시 월세 사는 사람에게는 다음 대선의 투표권을 빼앗기라도 한다는 말인지 도통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입자 보호 위한 임대차 3법 놓고
국회에서 벌어진 ‘진짜 임차인’ 논란
전세 좋고 월세는 나쁜가 쟁점 촉발

전세 낀 갭투자 아파트값 급등 초래
서민은 내집 마련커녕 전셋값 허덕
월세율 낮추는 데서 해법 모색해야



전세가 우리나라에만 있는 제도라는 사실은 아마 다 아실 터이다. 그런데 전세라는 제도는 참 재미있다. 가령 집주인은 3억 원이 넘는 아파트를 사서 임차인에게 2억 원에 살게 해 준다. 물론 서울이라면 이보다 두 배 이상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아무튼 이렇게 보면 착한 전세가 맞다. 전세를 놓는 집주인들은 모두 얼굴 없는 천사들임에 틀림없다. 아니면 둘도 없는 바보들이든가. 물론 집주인들은 천사도 아니고 바보는 더더욱 아니다. 집주인들이 3억 원짜리 집을 2억 원에 빌려주는 이유는, 전세의 목적이 임대수입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집주인의 목적은 아파트값이 오를 때까지 기다리는 데 있다. 다만 부동산 가격이 오를 동안에 두 채, 세 채씩 비워 두는 것보다 전세라도 내놓으면 그 돈에 은행 대출을 보태 한 채 더 사고, 그 전세에 다시 은행 대출을 보태 또 한 채 더 사고, 이것이 대한민국의 졸부들이 부동산으로 부자가 되는 요령이다. 정부의 온갖 대책에도 부동산 가격은 자꾸 오르고 가진 이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이는 더 가난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세 제도의 다른 문제는 평범한 서민들에게는 내 집 마련은커녕 전세 마련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데 있다. 요즘 청년들의 취업이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지만, 다행히 원하는 직장에 취업이 되었다고 하자.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해 10년 후에 결혼을 한다고 가정하면 과연 우리나라의 평균적인 청년직장인들이 10년 동안 모을 수 있는 저축이 얼마나 될까? 솔직히 갓 입사한 신입사원이 월급에서 밥값 빼고 교통비 빼고 가끔 친구들과 소주 한 잔 마시고 애인이랑 영화 한 편 보면 뭐가 남는가 말이다. 그래서 결국 부모가 지원해 주지 않는 청년은 내 집이 아니라 내 전세도 못 구해서 죽을 때까지 원룸에서, 옥탑방에서, 반지하에서 살아야 한다. 부모의 처지도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30년씩 직장생활 끝에 늙어 조금이나마 덜 궁하게 살아보려고 아등바등 모은 자금을 모두 자녀들의 전세값으로 지원해 주고, 생계를 위해 학원 버스 기사로 아파트 경비원으로 내몰려야 하니 죽을 때까지 노동의 굴레를 벗을 수 없다. 한 마디로 전세는 우리나라 부동산 문제의 모든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제도다. 어떻게 임차인을 보호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이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느냐가 문제다.

좋은 전세, 나쁜 월세라고 말하는 분들은 월세가 전세보다 부담이 크다는 이유를 댄다. 전세는 내 돈, 월세는 남의 돈이라고 말하는 이도 많다. 가령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전세를 얻더라도 빚을 다 갚고 나면 그 돈은 내 돈이지만, 월세는 나가면 돌아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분들이 보기에 은행이자는 돈이 아닌가 보다. 물론 은행의 이자율이 월세율보다 낮기는 하다. 그렇다면 월세 살 일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월세율을 낮추면 될 일 아닌가. 문제는 딴 데 두고 엉뚱한 데서 답을 찾으니 헤맬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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