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소녀상 합법화했다고 정부가 시의회에 딴지 걸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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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가 ‘평화의 소녀상’(소녀상)을 합법화한 부산시의회의 조치가 불법이라며 재의를 요구했다고 한다. 사실상 부산시의회를 대상으로 대법원 제소를 예고한 것이다. 다른 데도 아니고 우리 정부가 이런 일을 벌인다니 황당할 따름이다. 부산시의회가 통과시킨 소녀상 점용료 감면 조례 개정안은 지난달 15일 공포됐다. 국토교통부 주장의 요지는 조례는 점용료의 산정 기준만 정할 수 있을 뿐 면제 여부는 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도로법에 그렇게 돼 있다고 한다. 선뜻 납득하기도 어렵거니와, 이미 공포돼 시행에 들어간 조례를 굳이 광복절을 앞둔 이 시점에 문제 삼는 의도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점용료 감면 조례 법리 재검토 주장
시민 의지 반하는 조치 개탄스러워

소녀상은 일본에게 과거사에 대한 사죄를 촉구하기 위해 2016년 설치됐다. 하지만 소녀상 설치를 불법으로 규정한 부산 동구와 물리적 충돌까지 빚으면서 한때 철거되기도 했다. 점용 허가 없이 불안한 상태로 있던 소녀상은 지난해 9월 부산시의회가 조례를 개정해 점용 허가 대상에 포함됐고, 지난달 점용료 면제 조례까지 공포된 것이다. 이어 시민단체가 동구에 점용 허가를 신청했고, 최근 승인돼 마침내 합법화됐다. 이처럼 부산 시민들이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가까스로 지켜낸 소녀상이다. 그런데 정부가 이런 시민들의 간절한 뜻에 공감하고 격려하기는커녕 오히려 딴지를 걸고 있으니 개탄스러울 뿐이다.

안 그래도 주부산 일본 총영사가 지난 6일 동구를 방문해 소녀상 점용 허가 요청을 승인한 데 대해 유감을 표명하며 취소할 것을 요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동구가 적법한 절차에 따른 승인이라 취소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전달했다고는 하지만, 그와는 별도로 일본의 후안무치한 행태에 시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아무리 자국의 이익을 대변할 수밖에 없는 총영사라고는 하지만, 과거의 잘못에 대한 반성은 하지 않고 오히려 시민의 힘으로 설치한 소녀상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건 월권이자 내정간섭이다. 대한민국 정부라면 마땅히 일본의 그런 행태를 먼저 꾸짖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미심쩍은 법 조항을 들먹이며 법리 검토 운운하고 있으니 진정 어느 나라 정부인지 의심이 들 정도이다. 소녀상의 점용료 감면 조례는 이미 공포된 뒤라 재의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따라서 국토교통부가 대법원에 해당 조례의 잘잘못을 가려달라는 소를 제기할 것이라는 게 부산시의회의 판단이다. 그 경우 만에 하나 해당 조례가 잘못된 것이라 판시되면 그 혼란과 반발을 어떻게 감당하겠다는 건가. 도대체 무엇을 얻고자 재의를 요구한 것인가. 악화일로의 한일 관계를 의식한 조치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는 해도 분명히 할 건 분명히 해야 한다. 한일 관계를 개선하는 건 소녀상 철거가 아니라 일본의 진정한 사과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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