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전국의 무주택 세입자여, 단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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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일 편집국 디지털센터장

마르크스가 한국 사회를 분석한다면 <자본론> 대신 <부동산론>을 썼으리라.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자본의 착취가 아닌 부동산 불평등에서 찾았을 테니까.

한국에서 부동산은 사용가치보다 교환가치에 방점이 찍힌다. 주거 수단에 그치지 않고 내 재산으로 소유하려는 욕망, 나아가 재산 증식 수단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그 부작용으로 형성된 부동산 계급 사회는 자산 불평등과 사회 갈등을 축적해 왔다.

국회발 전월세 논란 보면서
내 집 없어도 행복한 사회
인식 대전환과 제도 개선
부동산 정책 목표 돼야

부동산 기득권 나설리 없으니
무주택 세입자 공론 나서야

부산에 사는 40대 직장인 L씨는 이른바 ‘아파트 쇼핑’으로 불로소득을 얻어 우쭐한 적이 있다. 유동 자산 전부인 1억 원의 투자처를 찾다가 낮은 금리, 실패 가능성이 있는 주식을 피해 부동산을 선택한 것. 그 결과 광주시와 경북 포항시, 경기도 군포시 소재 소형 아파트 4채를 매입했다.

어떻게 1억 원으로 아파트 4채를 매수할 있느냐고? 게다가 생활권과 멀리 떨어진 지역 부동산 정보를 어떻게 알아서? 전세금을 끼고 저가 아파트를 사들이는 갭투자 방식이라 가능했다. 전세가율이 높은 소형 아파트는 2000만~3000만 원을 들이면 매수가 가능했다. 갭투자만 취급하는 센텀시티의 부동산 업소는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했다. 매수와 대출, 임대 업무 일체를 위탁했으니 마지막에 계약서에 도장만 찍으면 됐다.

4년여 지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다주택자를 옥죄는 부동산 대책이 발표되기 시작했다. 4채 모두를 처분했다. 결과는 100% 수익. 요지경이었다. 하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집을 모두 처분하고 금정구에서 전세로 살고 있는 그는 요즘 씁쓸한 뒷맛을 느끼고 있다. 거주지 코앞에 2017년 입주한 아파트는 30평형대가 8억 원 대 중반을 넘겼다. 분양가에 비해 3억 원 이상 오른 것이다. 인근의 주상복합아파트는 내년 입주를 앞두고 분양권 프리미엄이 1억 원 이상 붙었다. 외지인 투자가 몰린 탓이다. 중개업자들은 “오를 테니, 지금이라도 들어가라”고 부추긴다.

‘나는 임차인입니다’ 발언으로 유명해진 미래통합당 윤희숙 의원은 국회에서 “전세 대란이 일어나고 있다”며 정부 부동산 정책을 비판했다. 6·17 대책이 나온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발표된 7·10 대책의 실효성을 따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윤준병 의원은 “전세는 선이고 월세는 악이라는 표현은 부적절하다”고 반박하고 나서면서 전세와 월세 논란으로도 이어졌다.

이 전월세 논란은 어찌보면 바람직하다. 사회적 공론에 부쳤으면 좋겠는데, 결과적으로 해법은 전세냐, 월세냐에 있지 않다. 부동산 가격 안정과 주거 복지 실현 논의를 이 전세, 월세 논란에서 시작했으면 좋겠다. 무주택 세입자의 시선에서 출발할 수 있어서다.

전월세상한제나 계약갱신청구권이 포함된 7·10 대책은 임차인을 보호하고 임대인의 부담을 늘리는 취지다. 대출 규제와 다주택자 과세 부담으로 전세를 낀 갭투자도 레드오션이 됐다. 무주택자 세입자 입장에서는 바람직하다고 느낄 법한데 역풍이 분 것은 “평생 세입자로만 살란 말인가”하는 불안감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에 유일한 전세 제도는 갭투자의 환경을 조성해 부동산 거품에 책임이 있다. 한데, 전세 선호와 월세 기피의 고정관념은 굳건해서 부동산 대책의 반감에 일정 영향을 미쳤다. 저금리 시대에 월세 전환은 자연스런 추세다. 7·10 대책은 월세 전환에 가속도를 붙였을 뿐이다.

한국 부동산 값은 수요와 공급, 세제, 금융, 교육과 교통 등 인프라 변수들이 얽힌 고차원 방정식 같다. 어렵게 풀지 말고 쉽게 접근하자. 이번 전세 월세 논란을 통해 집을 소유하지 않고도 불행을 느끼지 않게 해야만 부동산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을 새삼 깨달았다.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 꼭 내 집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런 큰 의식 변화에 따라 사회제도가 정비되어야 한다. 무주택 세입자의 주거 안정권이 보장되는 한편 부동산 소유자와 임대인이 투기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없게끔 7·10 대책 보다 더한 초강력 규제책을 마련하면 된다.

연봉 6000만 원을 받는 직장인이 한 푼도 쓰지 않고 20년을 모으면 12억 원이다. 실제 그 보다 비싼 아파트가 수두룩하다. 그런 똘똘한 아파트 한 채가 인생 목표가 되면 거기에 도달하지 못하는 사람 모두가 실패자가 된다.

집을 소유하지 않아도 주거 불안 없이 안정된 미래를 꿈꾸며 결혼과 출산을 할 수 없는 사회는 불행을 넘어 불의하다.

부동산 계급 사회 대한민국을 들여다본 마르크스라면 어떤 해법을 내렸을까.

전국의 무주택 세입자들이여 단결해 투쟁하라고 선언하지 않을까. 부동산 기득권자들이 나서줄리 만무할 테니.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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