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 직접 호주 와서 골프장 돈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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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 일가가 운영해 온 것으로 알려진 호주 골프장의 실소유주가 박 원장이라는 내부 관계자 증언이 처음으로 나왔다. 향후 정부 진상조사 과정에서 박 원장 일가 부정축재 재산에 대한 환수와 피해자 보상까지 나아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형제복지원 피해자 임봉근(73) 씨가 호주 골프장에서 일했던 7년의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오른쪽은 호주 골프장 주차장에서 천막 공사를 하는 임 씨.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이자 호주 골프장에서 일한 임봉근(73) 씨는 최근 <부산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박인근 원장이 한 달에 한 번씩 호주 골프장을 찾아 매출 등을 직접 관리했다고 밝혔다.

호주 골프장서 일한 임봉근 씨
‘해외로 빼돌린 재산’ 첫 증언
“박 원장 매월 한 차례 찾아와
매출·골프장 관리 꼼꼼히 점검”
사위에 몰래 골프장 명의 넘겨
“실소유주 입증 부정축재 환수”

1987년 부산 남포동 거리에서 형제복지원으로 끌려간 뒤 박 원장과의 악연이 시작된 임 씨는 1995년 호주 골프장이 처음 문을 열 때부터 7년 가까이 현지에서 인부로 일한 인물이다. 임 씨는 박 원장이 형제복지원 사건으로 옥살이를 하고 나온 즈음 자신을 불러 “호주에서 일해 볼 생각이 없냐. 공기도 좋으니 가서 골프 기계도 고치고 하라”는 지시를 받고 1995년 9월 호주로 날아갔다. 그는 주차장 용접 공사 등 골프장 개장 준비부터, 잔디깎기·골프 기계 수리 등 잡무를 도맡았다.

임 씨 증언에 따르면 박 원장은 골프장이 문을 연 뒤 한 달에 한 번씩 한국에서 날아와 돈 관리를 꼼꼼하게 살폈다고 한다. 임 씨는 “박 원장이 하루에 얼마나 공이 나갔는지, 매상이 얼마나 올랐는지를 직접 챙겼다”며 “잔디가 얼마나 자랐는지 등 골프장 관리의 세세한 부분도 점검했다”고 말했다.

임 씨는 “한번은 겨울 장마 때 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잔디가 무성했는데, 관리 부실을 이유로 박 원장이 휘두른 골프채에 사정없이 두들겨 맞았다”며 “이웃 호주 사람들이 신고해 현지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앞서 <부산일보>는 박 원장을 호주 골프장의 실소유주로 볼 수 있는 증거로, 골프장(체육센터)이 일일 매출을 보고한 문건을 입수해 공개(부산일보 2018년 4월 16일 자 1면 보도)한 바 있다. 임 씨는 “매출 부분은 사위가 한국에 팩시밀리 문서로 보내 박 원장에게 보고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호주 시드니 인근 밀페라 지역에 위치한 문제의 골프장은 대지 면적만 8만㎡에 이른다. 골프연습장을 비롯해 테니스장, 헬스 시설 등을 갖춘 종합 스포츠센터다. 현재도 박 원장의 셋째 사위가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 씨는 “처음엔 박 원장의 셋째 아들이 관리를 맡았는데, 제대로 하지 않아 호주에 살던 셋째 사위까지 가세했다”며 “셋이서 관리했지만 잔디깎기 등 잡일은 나 혼자 도맡았다”고 털어놨다.

임 씨 출입국 기록을 보면 형제복지지원재단 ‘실로암의 집’(기장군 정관읍)에서 일한 기간(2000~2003년)을 제외하고, 1995년 9월부터 2005년 2월까지 18차례나 호주와 한국을 오간 것으로 돼 있다. 그는 “호주에서 일한 지 4년쯤 지나 동료 1명이 더 합류해 번갈아 가며 호주와 한국을 오갔다”며 “3개월 일하고 한국으로 들어와 열흘 동안 비자를 재발급받아 다시 호주로 출국해 일하는 생활의 반복”이었다고 회고했다. 하루 3~4시간씩 자며 고된 노동에 시달렸지만, 임금은 고작 ‘주급 20달러’가 전부였다.

임 씨 증언 중에는 골프장 소유권 관련 ‘탈법’을 의심할 만한 내용도 있어 눈길을 끈다. 그는 “하루는 사위가 자기 아버지와 함께 나를 찾아와 골프장을 자신들 명의로 바꾸려고 하는데 ‘말이 새 나가면 국가로 넘어가 버리니, 묻어 달라’고 했다”며 “골치 아픈 일에 엮이기 싫어 비행기표를 끊어 완전히 귀국했다”고 말했다. 임 씨는 “당시에 사위가 말하길 ‘장인어른이 다른 사위들에겐 집 사 주고 전부 다 해 줬다. 박 원장의 승낙을 받았다’며 세 번이나 찾아와 부탁했다”고 덧붙였다.

임 씨의 이 같은 증언은 향후 정부 과거사위원회의 진상 조사에서 박 원장 일가의 ‘재산 부정축재’를 밝힐 중요한 근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형제복지원이 1987년 문을 닫을 때까지 12년 동안 박 원장이 따로 재산을 빼돌렸을 것이란 소문은 무성했지만, 내부자의 직접 고발은 임 씨 증언이 최초다.

부산시의회 박민성 의원은 “박 원장 일가 재산의 출발점을 따져 보면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의 노동착취와 인권유린이 그 시작”이라며 “과거사위가 면밀하게 조사를 진행해 부정축재에 대한 부분은 국가가 반드시 환수하고, 피해자 배·보상을 위해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사진=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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