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대형마트와 동네 슈퍼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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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연 경제부 차장

어릴 때 문방구 가는 걸 좋아했다. 세상 신기한 장난감 구경이나 쫀드기와 같은 불량 식품을 사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하지만 구경만 하는 어린이들을 호되게 나무라는 주인 아저씨 때문에 마음 편하게 ‘아이 쇼핑’을 즐길 수는 없었다. 용돈 가진 친구를 앞세워 갈 때는 ‘너는 뭐 안 사냐’는 주인의 따가운 눈초리에 급하게 가게를 나오곤했다. 이 때문인지 문방구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문방구의 추억’이 다시 떠오른 것은 최근 기업형 식자재 마트에 관한 기사 때문이었다.

대구 기반의 기업형 식자재 마트가 부산과 경남 시장을 공략하려고 하자 지역의 중소상공인들이 반발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인터넷에 기사가 게재되자 대기업 규제에 반대한다거나 지역 중소상공인에 대한 비판의 글이 많았다. 즉 동네 슈퍼마켓을 가든지, 대형마트를 가든지 소비자가 알아서 판단할 일이지 정부가 규제해서 대형마트를 막아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었다.

이 견해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작은 동네 슈퍼마켓들이 속속 문을 닫고 대부분 대기업 계열의 편의점으로 간판을 바꾸는 것이 현실이다. 동네 슈퍼마켓이 모두 대기업에 편입되면 거대 자본이 선택한 상품만 소비자들에게 공급된다.

대기업 제품이 항상 동네 가게 제품보다 더 싸고 질이 우수할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신선 식품의 경우, 지역에서 생산되는 제품은 대기업의 복잡한 유통망을 거치며 시간과 비용이 더해져 지역으로 다시 공급된다. 유통망과 결정 구조가 단순한 동네 가게가 대기업보다 경쟁력이 뛰어나다.

물론 대기업 유통업체들이 ‘바잉 파워’를 앞세워 싸고 질 좋은 제품을 대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사실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경쟁력 있는 동네 가게와 대형마트 둘 다 살아남아 그 중 한 곳을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 제일 유리하다.

그럼에도 댓글은 ‘비싸게 받고 불친절한’ 재래시장 상인과 중소상공인에 대한 분노로 가득했다. 왜 이렇게까지 이들에게 적대적일까? 문방구 주인이 떠오른 것도 이 대목이었다. 눈앞의 잇속을 챙기느라 야박한 이들에게 대한 불쾌한 기억이 작용한 걸까?

개인의 야박함이 도 넘는 집단 이기심으로 나타날 때의 실망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수 년 전 부산에서 모 대형 유통업체가 문을 열자 인근 상인들이 상생지원금 명목으로 수십억 원을 받아 상생 취지와 다르게 사용해 뒷말이 무성했다. 최근 한 전통시장에서는 현대화 사업을 위해 일부 부지를 정리해야 하지만, 상인회 임원 소유의 부지가 포함되어 있어 사업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가게가 구멍가게 코앞에 자리를 잡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본다.

소비자의 다양한 선택을 보장받기 위해서라도 대기업과 그에 준하는 기업의 독식을 막는 규제는 필요하다. 대기업 혼자 살아남기보다 다양한 크기의 업체가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이 자본주의 생태계를 지속가능하고 풍요롭게 한다. 덧붙여 중소상공인도 당장 자기 주머니 속의 이익을 넘어 상생의 가치를 추구하길 주문한다. 그래야 상생법 등 각종 대기업 규제가 중소상공인들의 ‘약자 코스프레’에 휘둘린 결과라는 경멸을 받지 않을 것이다. 


sj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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