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쳐주는 당구' 추억의 취미에서 모두의 레포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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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즐거움






부산 부산진구 개금동 H빌리어드에서 사람들이 당구를 즐기는 모습.




예전 한국 영화에서 당구장은 패싸움의 배경으로 자주 등장했다. 담배를 물고 당구를 치다가 시비가 붙는다거나 불량청소년들이 당구장에서 학생주임 선생님에게 끌려 나오던 장면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김치당구장에서 당구 시범을 보이는 채문철 감독.


이제 완전히 옛말이다. 당구장이 변했다. 실내금연체육시설로 지정돼 담배 연기는 사라졌고, 대부분의 당구장은 술을 마신 사람은 입장조차 할 수 없다. 짜장면을 시켜 먹는 사람도 없다. 국제경기용 당구대를 갖추고 진지하게 승부를 겨룬다. 2020년, 당구는 남녀노소 모두가 즐기는 건전한 스포츠로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담배 연기·청소년 출입금지는 이제 옛말
쾌적한 실내에서 기술 겨루는 ‘건전 스포츠’
비용은 10분당 1500~2000원 가성비도 짱

흥미 만점, 가성비 최고!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쾌적한 실내에서 공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대대’라고 불리는 국제경기용 3구 당구대 8대, 대대보다 크기가 작고 4구를 즐기는 중대 7대, 포켓볼용 당구대까지 있는 이곳은 부산 금정구 남산동의 김치 당구장이다. 규모가 큰 편이지만 평일 낮에도 당구대가 다 찼다.

“엄청 재미있지요. 여러 운동을 해 봤지만, 당구만큼 재미있는 게 없어요. 골프보다도 훨씬 재미있어요. 우리 같이 나이가 있는 사람도 무리 없이 즐길 수 있고. 나는 또래 친구들하고 당구하고 동생, 후배들하고도 자주 당구장에서 만나서 즐기는 편이죠.”

경찰공무원을 은퇴하고 현재 기업을 경영하고 있다는 조정훈 회장이 당구 예찬론을 펼친다.

다른 한쪽에서는 20대 대학생들이 연신 웃으며 당구를 즐기고 있다. 김치 당구장을 찾은 날,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주말에는 초등학생 아들을 데리고 부자가 함께 오기도 하고 손주를 데리고 오는 할아버지도 있어요. 아빠와 엄마, 아이까지 온 가족이 출동하기도 하죠. 아빠나 할아버지에게 진지하게 당구를 배우는 아이의 모습이 보기 좋아요.”

김치 당구장을 운영하면서 현재 부산시체육회 당구연맹 부회장, 부산시 실업당구대표팀 감독으로 활동하는 채문철 대표의 설명이다. 채 대표는 당구 선수로도 활약했고 올해까지 벌써 40년 가까이 당구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야말로 당구장의 변천사를 직접 경험한 셈이다.

“50대 이상은 누구나 당구를 친 기억이 있죠. 젊은 시절 한창 당구를 즐기다가 잠깐 잊어버렸는데 시간이 생기며 다시 예전 기억으로 당구장을 찾는 편입니다. 환경도 쾌적해져서 예전보다 더 재미있다고 하시네요.”

무엇보다 당구는 10분당 1500~2000원 정도의 비용으로 2~3명이 즐길 수 있어 일명 ‘가성비 짱 스포츠’로 불린다. 거기에 무료로 음료까지 즐길 수 있다.



카메라 탑재 자동 촬영, 기술 경쟁

“예전에는 당구치다가 많이 싸웠어요. 공이 스쳤다 아니다로 싸우고 빈정상하고 그랬죠. 그런데 요즘엔 바로 카메라로 촬영된 영상을 돌려보면 되니 싸울 일이 없어요. 당구장이 아주 조용해요.”

40대 후반의 김 모 씨. 대학 동기들, 회사 동료들과 1주일에 3~4번 정도 당구장을 찾을 정도로 당구에 푹 빠져있다. 김 씨는 당구장의 가장 큰 변화로 카메라 촬영과 컴퓨터가 자동으로 점수를 계산해주는 점을 들었다.

요즘 대부분의 당구장은 당구대 위에 카메라가 달려있어 경기를 자동으로 촬영한다. 당구대 옆에 놓인 모니터가 자동으로 점수도 계산하고 녹화된 장면을 되돌려볼 수 있다. 심지어 애플리케이션과 연동해 집에 가서도 그날 경기 영상을 돌려볼 수 있다. 일정 기간 저장이 돼 최근 몇 주 자신의 경기 영상을 다 볼 수도 있다.

김치 당구장을 비롯해 시설이 좋은 당구장들은 위쪽에서 촬영하는 카메라 외에도 측면 카메라가 찍은 다른 각도의 영상까지 제공하고 있다.

“프로당구가 출범하고 24시간 당구 경기를 보여주는 당구 채널이 생기며 당구 저변 확대가 많이 됐죠. 유명 스타 선수들은 연예인만큼이나 인기가 많아요. 당구를 좋아하는 이들은 당구 채널을 보며 고급기술을 익히기도 합니다.”

부산시체육회 당구연맹 선수위원이며 H빌리어드를 운영하는 박종일 대표의 설명이다. 박 대표가 부산시 당구연맹에서 대표선수들을 챙기는 역할을 하다 보니 박 대표의 당구장은 자연스럽게 선수들이 자주 찾는다. H빌리어드에선 선수들과 직접 당구를 칠 수 있다는 소문이 나며 이곳에는 부산의 고수 당구 마니아들이 몰리고 있다.

취재를 위해 H빌리어드를 찾은 날에도 지난해 한국프로당구투어에서 우승해 1억 원의 상금을 차지한 ‘프로당구의 아이돌’ 신정주 선수가 일반인들과 부담 없이 당구를 치고 있다.

H빌리어드는 국제경기용 당구대인 ‘대대’만 갖추고 있어 볼이 부딪치는 소리 외에 말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다. 상대방이 경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당구 예의를 철저히 지키고 있다. 취재를 위해 질문을 하는 것이 무안할 정도로 집중하는 모습이다.



운동 효과 좋고 집중력에 도움

당구는 큰 힘이 들어가지는 않지만, 운동 효과는 이미 입증돼 있다. 일반적으로 당구대 한 바퀴를 돌면 10~13m를 걷는 편이라 1시간 당구를 즐기면 적게는 2km에서 많게는 4km까지 걷는 셈이다. 스포츠의학 전문가들은 “당구는 과격한 신체 접촉이 없고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저강도 운동으로 나이가 있는 시니어들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고 설명한다. 공을 칠 때 취하는 기마 자세는 하체 근력 향상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한다.

공을 칠 때 집중해야 하고 공략법이 엄청나게 많아 계속 생각해야 한다는 장점도 있다. 시니어 세대들에겐 치매 예방에 좋고 어린이, 청소년들에겐 집중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 실제로 요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방과 후 활동이나 동호회 활동으로 당구장을 찾기도 한다.

당구 대간의 거리가 넓고 한 사람이 경기할 때 다른 사람은 앉아서 기다려주는 것이 당구의 예의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거리 두기가 실천된다는 점도 코로나시대에 장점으로 통한다. 그래서인지 당구장은 고위험시설로 분류돼 있지는 않다.

글·사진=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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