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것 너무 쉽게 허물고 잊어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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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식 가산건축사사무소·문화골목 대표

“부산의 역사를 간직한 근대 건축물들과 거리 풍경이 훼손되거나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습니다. 사람들의 기억이 머물고 소중한 추억의 장소였던 부산 근대건축 흔적에 대한 시민 관심이 높아졌으면 합니다.”

최윤식(62) 문화골목 대표는 최근 <사라진 건축, 잊힌 거리>(루아크)를 출간했다. 건축사인 최 대표는 2015년부터 부산 근대건축을 세밀화로 그리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2018년 1월부터 2019년 2월까지 본보에 ‘사라진 근대건축, 잊힌 근대건축’ 시리즈를 연재했다. 최 대표는 본보에 실린 내용을 보충해 1910년대부터 1970년대에 이르는 부산 근대건축 세밀화 68점을 책에 수록했다. 1910년대 부산항에서 시작해 1953년 부산역전 대화재로 소실된 부산역, 1928년 준공된 문화공간인 부산 공회당은 물론 아직 남아 있는 석당박물관, 일신여학교 등 근대건축물이 나온다. 근대건축 세밀화와 에세이를 함께 실은 책은 경제개발과 산업화, 일제 잔재 청산의 흐름 속에서 사라지거나 잊힌 근대도시 부산의 흔적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사라진 건축, 잊힌 거리' 최근 출간
1910~1970년대 건물 세밀화로 복원
"부산 근대건축 흔적 관심 기울여야"

최 대표는 “대부분 사라지고 사진으로만 남은 근대건축물이 많아 입체적인 투시를 활용하고 상상력을 발휘해 원형 복원에 초점을 맞췄다”고 했다. 부산 부립도서관 세밀화가 대표적이다. 건물 가운데만 남은 사진 자료를 보고 건물 전체를 복원해 그렸다. 일제강점기 당시 도입된 서양식 건축이 대부분 좌우대칭이란 점을 고려했다. 부산역 세밀화에는 건물 앞에 인력거와 지게꾼을 그려 넣어 시대 분위기를 연출했다. 임시수도기념관 세밀화에는 이승만 대통령과 프란체스카 여사가 찍은 별도의 사진을 합성해 넣었다. 외양포 포진지 세밀화는 미리 조사한 일제강점기 포와 일본 군인 그림을 넣어 완성했다.

최 대표는 “오래된 것이 낡은 것이 아니라, 쓰지 않은 것이 낡은 것이다. 그 낡은 것조차 얼마 남지 않았으니 뒤를 이을 부산 사람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1971년 부산 최초 야구 전용 경기장으로 개장했다가 2017년 9월 철거된 구덕야구장 사례가 매우 아쉽다고 했다. 관 소유 부지에 지어졌는데도 건축적 활용 방안을 찾지 않고 허물어버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재개발 등으로 건축물을 너무 쉽게 허물고 잊어버리는 데 익숙합니다. 인공 건축물도 오래되면 그것 또한 자연입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자연 파괴를 되풀이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합니다.”

최 대표는 앞으로 진해, 목포, 군산 등 중소도시 근대건축물을 크로키로 그린 뒤 여행기로 남길 계획이다. 2년 전부터 범어사, 관룡사 등 전통건축물을 그리는 작업도 한다. 부산 동구청과 남구청에서 ‘어번스케치(도시 그리기)’ 강의를 하며, 건축과 도시에 대한 대중적 확산을 시도하고 있다.

부산대 건축공학과를 나온 그는 2008년 부산 남구 대연동 대학가에 ‘문화골목’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주)가산건축사사무소 대표와 비영리 문화단체 ‘문화호위단 장용영’ 대표를 맡고 있다.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사진=강원태 기자 w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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