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 872 > 아쉬워라 표준사전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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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다른 사람의 눈물은 내게 그저 물일 뿐’이라는 러시아 속담이 있다. 좀 비정하게 들리지만, 어차피 세상은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마련. 사실, 우리한테도 비슷한 속담이 있다. ‘먼 사촌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거나 ‘가까운 남이 먼 일가보다 낫다’를 보자면, 강도만 좀 약할 뿐 러시아 속담과 다를 게 없는 것. 내게 소용이 닿지 않는다면 황금이나 다이아라도 돌보다 쓸모가 없다.

3년 만에 다시 만난 tvN 드라마 ‘비밀의 숲2’에서 재밌는 장면을 본다. 검경수사권 조정을 다룬 이 드라마에서 검찰은 ‘검경’, 경찰은 ‘경검’이라고 부르는 것. 역시 ‘자기중심’은 인간 세상의 본질이다. 하지만 경찰엔 안타깝게도, ‘경검’은 아직 우리 사전에 오르지 않았다. 반면, ‘검경’은 이렇게 올라 있는데….

*검경(檢警): 검찰과 경찰을 아울러 이르는 말.(검경 합동 수사반.)

그래도 실망할 건 없다. 요즘 같은 분위기라면 아마 ‘경검’도 곧 사전에 오를 것이다. ‘군관민’이라고 쓰던 시절을 지나와서 이제는 ‘민관군’을 더 쓰듯이….

뭐, 그건 그렇고, 저 ‘검경’ 뜻풀이에서 ‘아울러’라는 표현에 주목해 보자. 아래는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표준사전) 뜻풀이.

*아우르다: ①여럿을 모아 한 덩어리나 한 판이 되게 하다.(여럿이 돈을 아울러서 선물을 준비했다./…) ②윷놀이에서, 말을 두 개 이상 한데 합치다.(이제 도만 나오면 두 윷을 아울러서 막 가게 되었다.)

즉, 모아서 한 덩어리가 되게 하거나 한데 합치는 걸 ‘아우르다’라고 한다. 해서, 부모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고, 부부는 남편과 아내를 아울러 이르는 말인 것. 그런 면에서 보자면, 표준사전의 이런 뜻풀이는 엉터리다.

*도검(刀劍): 칼이나 검(劍)을 아울러 이르는 말.(흰 것을 희다고 하고 검은 것을 검다고 소리쳐 말하지 않고 부월과 도검이 두려워 단지 그 한 몸의 명철보신만을 꾀하는 것으로서….<김성동, 연꽃과 진흙>)

이게 엉터리라는 건, 도검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라고 했으니 ‘칼과 검’이라고 해야 할 텐데 ‘칼이나 검’이라 했기 때문이다. 표준사전을 다시 보자.

*이나: (받침 있는 체언이나 부사어 뒤에 붙어)둘 이상의 사물을 같은 자격으로 이어 주는 접속 조사. 나열되는 사물 중 하나만이 선택됨을 나타낸다.(바자회 물품으로 책이나 옷을 받고 있다.)

이러니, 표준사전에 따르면 ‘이나’와 ‘아울러’는 절대로 함께 쓰일 수 없다. 부모를 ‘아버지나 어머니’, 부부를 ‘남편이나 아내’라고 쓸 수 있다면 모를까.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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