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담금 ‘큰손’ 부산시민, 환경시설비 수혜는 ‘빈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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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쓰듯 쓰인 물이용부담금] 4 오염자 따로, 부담자 따로

부산 시민의 식수 취수원인 경남 양산시 물금읍 물금취수장 일대 풍경. 최근 취수장 수질검사에서 난분해 화학물질 검출이 문제가 되면서 낙동강수계기금의 집행 방향도 바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부산일보DB

510㎞ 낙동강의 끝자락에 위치한 경남 양산시 물금취수장. 부산 시민의 식수원이자, 낙동강 상류로부터 쏟아져 정화되지 않은 오염물질이 차곡차곡 쌓여 검출되는 곳이기도 하다. 2002년 취수장에 공급된 낙동강 물의 BOD(생화학적 산소 요구량)는 평균 2.6이었다. 수질등급 3번째 등급(약간 좋음)으로 식수로 쓰기엔 부족한 물이었다. 당시엔 낙동강 주변 축사·농가는 물론 소도시의 오폐수 상당량이 강으로 쏟아지던 시절이었다. 국내 하수도보급률 75.8%에 불과했다.

올 1~7월의 물금취수장 BOD값은 평균 1.9로, 2번째 수급(좋음)으로 상승했다. 하수도 보급의 결과다. 2018년 기준 국내 하수도보급률은 93.8%까지 올라섰다. 수계관리기금상당액이 하수도 보급 등에 쓰이며, 환경부는 BOD값 감소를 물관리이용부담금의 최대 업적으로 꼽는다.

그러나 BOD 지표는 수질 상태의 단면만을 보여 준다. TOC(총유기 탄소량)는 생활하수에서 주로 검출되는 유기물뿐만 아니라 공장 등에서 나오는 화학물질 등도 측정하기 위한 개량 지표이다. 2008년 첫 측정 당시 물금취수장 TOC값은 3.5(3번째 등급)였지만, 올해는 4.5(4번째 등급)까지 떨어졌다. 낙동강 주변으로 각종 산단이 들어선 결과로, 이제 생활하수가 아닌 산업고도화에 따른 화학물질을 걱정해야 하는 시대다. 수계관리기금의 주요 사업도 변할 때가 온 것이다.

물이용부담금으로 하수시설 설치
국가 할 일 시민이 대신하는 셈
부산은 최고액 부담, 혜택은 꼴찌
상수원수 BOD값은 좋아졌지만
화학물질 지표는 오히려 떨어져
난분해성 물질 대응에 초점 맞춰야



■부담금의 주목적은 하수 처리?

물이용부담금으로 조성된 낙동강수계관리기금은 하수를 분리·정화하는 데 가장 많이 쓰인다. 지난해까지 환경기초시설 설치와 운영에 쓰인 기금만 2조 557억 원으로, 기금 누적집행액의 60%에 달한다.

이 중 환경기초시설을 설치하는 데 1조 449억 원이 쓰였다. 이 기금은 각 지자체가 하수관로·분뇨처리시설·하수처리 시설 등을 설치할 때 지원된다. 국내 하수도보급률이 선진국 수준 이상으로 올라오는 데 물이용부담금이 결정적 역할을 한 셈이다. 지원규모는 재정상태를 고려해 지자체마다 차별화돼 있다. 군의 경우 사업비의 60%, 시는 30%, 광역시는 15% 지원된다. 그 결과 경북과 경남은 전체 환경기초시설 설치 사업비 중 각각 49%, 38% 정도를 받았다. 반면 부산엔 지원금의 1%, 대구는 9% 정도만 지급됐다.

지자체가 공공하수처리시설이나 분뇨처리시설 등을 운영하는 경비도 지원해 준다. 기초환경시설 운영비 지원 용도로 사용된 기금은 지난해까지 모두 1조 108억 원이었다. 지난해 851억 원 정도가 운영비 지원으로 나갔는데, 매년 가파르게 비용이 증가하는 추세다. 경북과 경남은 각각 전체 지원금 중 42%와 32%를 받아 간 반면 대구는 20%, 부산은 4% 정도를 받았다.



■‘경로 의존성’, 호의가 권리로

기본적으로 최소한의 수질이 담보된 물을 시민에게 공급하는 건 행정 당국의 의무다. 따라서 수질 개선의 가장 기초라 할 수 있는 하수관을 설치하고 정화설비를 운영하는 건 정부나 지자체의 기본 업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수계관리기금의 환경기초시설 관련 사업으로 시민이 국가의 의무를 덜어 주고 있다.

문제는 수계관리기금 지원이 18년째 이어지다 보니, 지자체들도 기금 지원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수준이 됐다는 것이다. 애초 지역 내 하수관 설치나 정화시설 운영은 해당 지자체의 문제였지만, 기금 지원이 계속되다 보니 재정확보를 위한 노력이 약화되고 이제 스스로 하수관 설치도 어려운 심각한 ‘경로 의존성’ 상황에 이른 것이다. 지자체의 부족한 재정은 국비 지원으로 충당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정부도 시민들에게서 별도 부담금을 걷어 이를 메우고 있는 상황을 방관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연 500억 원대의 부담금을 내는 부산은 기금 조성에서 제일 큰 몫을 담당하지만, 기초환경시설 관련 지원의 1~3%가량만 받고 있어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이는 국내 환경정책기본법 7조에 명시된 ‘오염자 부담 원칙’에도 어긋난다. 오염을 유발한 원인 제공자가 책임을 지는 것이 원칙이지만 지금은 원인 제공자가 아닌 사용자가 부담을 떠안은 상태로, 그중에서도 하류 쪽 시민이 가장 큰 비용을 치르고 있다.

이런 불합리성에 대한 지적은 학계에서도 이미 나오고 있다. 특히 국내 하수도보급률이 93%를 돌파하고 낙동강에서 유기물질이 아닌 난분해성 화학물질의 위협이 커지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 기초환경시설 운영비만큼이라도 해당 지자체와 정부의 부담을 늘리고 절감된 수계관리기금을 난분해성 화학물질에 대응하는 쪽으로 쓰는 방안 등이 논의되고 있다. 부경대 행정학과 김창수 교수는 “기금 조성 초기만 하더라도 지자체들이 기금 지원을 고마워했는데, 이제는 권리로 생각한다”며 “오염자 부담 원칙이 무시되고 사용자가 부담을 짊어지는 형태로, 법의 취지에도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김백상·박혜랑 기자 k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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