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부·울·경의 길로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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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 경제부 산업팀장

그럴 줄 알았다. 부산·경남이 줄기차게 요구한 예산이 최근 끝내 묵살됐다. 정부 내년도 예산안에 아예 올라가지 않았다. 정부 관료집단의 안중에 지방은 없는 듯하다. 부전-마산 복선전철 사업 얘기다.

공평하지가 않다. 차별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수도권 철도엔 나랏돈을 들여 전동열차를 넣어주면서 지방은 지방자치단체가 알아서 하란다.

부전-마산 복선전철과 사업형태가 똑같은 경기도 부천(소사)-안산(원시) 철도엔 2018년부터 국비로 마련된 전동열차가 달린다. 서울과 수도권 주요 도시를 잇는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A·B·C 3개 노선도 국비 예산으로 깔린다.

수도권 적극 지원, 지방 요구는 묵살
‘중앙정부’ 안중에 지방은 없다
부·울·경 초광역화·메가시티 꿈 부상
가덕신공항 추진 등으로 지역 미래 찾자

부산시와 경남도는 부산 부전역~경남 창원시 마산역 복선전철화 구간 전동차 제작비 등 255억 원을 내년 국토교통부 예산에 반영할 것을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부산·경남 경제계도 이 사업을 위해 공동 전선을 펼쳤다. 부산상공회의소와 창원상공회의소는 지난 7월 국비 지원을 촉구하는 공동건의문을 국토부와 기획재정부 등에 전달했다. 소규모 예산이지만 지방과 수도권 차별의 대표 사례로 부각돼 지역민 입길에 계속 오르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산·경남 지방정부와 경제계 등의 애절한 외침은 끝내 공허한 메아리로 되돌아왔다. 똑같은 잣대로 선을 그으면 얼마든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수도권은 되고, 지방은 안 된다’는 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는 논리는 누가 선뜻 받아들일 수 있을까.

울어 보채듯 요구만해선 앞서 나아갈 수 없다. 정부 지원만 바라보는 태도로는 한계가 있다. 언제까지 ‘중앙’의 ‘시혜’에만 기댈 것인가.

부산·울산·경남을 아우르는 동남권 인구는 800만 명을 넘는다. 수도권에 맞대응할 수 있는 국내 2대 인구 밀집지이다. 부·울·경 지역은 기간산업이 몰려 있는 핵심 경제권이기도 하다. 이 정도 인구와 경제 규모이면 자생력을 모색하기에 충분하다. 무지한 감상평이 아니다. 부·울·경 광역경제권을 구상하는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수도권 일극화와 ‘지역 불균형 발전’에 넌더리가 난 부·울·경이 마침내 다른 꿈을 꾸기 시작했다. 부·울·경의 ‘초광역화’, ‘메가시티’, ‘지역국가’ 등의 개념을 지역민 모두가 진지하게 곱씹으며 구체적 방법론을 고민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소지역주의에 매몰돼 서로 으르렁대는 모습도 더는 찾아보기 어렵다. 한뜻으로 뭉치지 않으면 덩치로 뭉개려 드는 수도권의 그늘에서 영영 벗어나기 어렵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을 수도 있다.

늘 동상이몽인 듯하던 부·울·경이 한목소리를 내는 상황이 요즘 부쩍 잦아졌다. 신공항 문제를 놓고 미묘한 시각차를 보이던 부·울·경 경제계가 가덕신공항 건설에 한뜻을 모은 게 대표적이다. 부산상공회의소와 울산상공회소, 경남상공회의소협의회는 지난달 말 공동성명서를 통해 “조속한 가덕신공항 건설 촉구”를 외쳤다. 울산과 경남은 지금껏 부산의 동남권 신공항 건설안에 발맞춰 왔지만, 신공항 입지를 두고는 극도로 말을 아껴 왔다.

이 같은 상황에서 울산·경남 경제계가 신공항 입지로 가덕도를 선택하며 부산의 손을 들어준 건 대단히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가덕신공항은 이른바 부·울·경 초광역화, 부·울·경 메가시티 추진을 위한 핵심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김현석 부산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발표한 연구에서 수도권에 대응하는 남부경제권 구축을 위해선 부·울·경 신공항 건설이 필수 조건이다고 제시했다. 국가 2대 경제권인 일본 오사카시 권역엔 간사이공항이 있고, 이탈리아 밀라노엔 밀라노공항과 말펜사공항이, 독일 뮌헨엔 뮌헨공항이 있다. 같은 논리로 대한민국 2대 경제권 부·울·경 초광역권엔 가덕신공항이 꼭 있어야 한다.

시작이 반이다. 부·울·경은 초광역권 핵심 프로젝트인 가덕신공항에 벌써 마음을 하나로 모았다. 이제 앞으로 나아갈 일만 남았다. 정부가 던져주는 사업과 예산에 목매고 있다간 지역의 미래를 잃게 된다. 부·울·경이 먼저 대규모 광역경제권 구축 사업을 펼치며 정부 지원을 압박하는 전략이 절실하다. 부·울·경의 뜻과 논리로 우리의 길을 스스로 개척하자.

hoor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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