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거리·아미동·재첩잡이… 민속문화 두께를 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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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민속 주제별 조사 보고서

부산 좌천동 자개골목을 마지막까지 지키고 있는 절삭공 일호공예 이일환 씨. 그의 실력은 일본에서 더 알아준다고 한다. 아래쪽은 부산 민속 주제별 조사 보고서 5권.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부산 민속 주제별 조사 보고서 5권.
‘2021년 부산 민속의 해’에 앞서 영도 민속 조사 보고서 5권(부산일보 9월 3일 자 18면 보도)과 함께 부산시와 국립민속박물관이 출간한 부산 민속 주제별 조사 보고서 5권(총 1200쪽)도 주목할 만하다. 부산 근현대 민속 문화의 깊이와 두께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5권은 <좌천동 가구거리와 자개골목>(이현주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낙동강 하구 재첩마을과 재첩살이>(황경숙 부산시 문화재위원), <아미동 이야기>(우신구 부산대 교수), <길이 만든 부산>(차철욱 부산대 교수), <국제시장>(오세길 동의과학대 교수)이다.

부산시·국립민속박물관 출간
‘좌천동 가구거리와… ’ 등 5권
부산 근현대사 입체적 서술
채집과 기록 더 깊고 넓어져야
콘텐츠 활용 방안도 모색해야

<길이 만든 부산>은 이동·교류의 관점에서 부산의 길(바닷길 기찻길 육로 낙동강길)에 주목해 부산 근현대사를 재편집한 것이다. <아미동 이야기>는 아미동의 역사와 삶을 체계화하고 입체화한 서술로 아미동에 대한 관점이 분명하다. 아미동은 부산 중심의 변두리였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에게 중심을 내어준 조선 사람, 해방 이후에는 귀환동포, 6·25 전쟁 이후에는 피란민, 산업화 시대 이후에는 농촌을 떠나온 노동자… 역사책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지만 그들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부산이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국제시장>은 국제시장 역사와 상인들의 구술을 모은 보고서다.

부산 연구자 5명이 각 권(180~280쪽)을 쓴 이들 보고서는 여러 시사점을 준다.

첫째 민속 조사 대상이 수백 년 이어 온 것뿐 아니라 당대 생활 속에 녹아 있는 것으로도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도시 민속, 근현대 생활문화, 가옥과 생활, 시장 민속, 사라져가는 직업 등 아주 다양하다.

둘째 부산 근현대사에 대한 시민적 관심이 높은 만큼 부산에 대한 서술 작업의 심도가 더 깊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좌천동 가구거리와 자개골목>은 ‘좌천동’에 대한 깊이 있는 채집과 기록으로 주목할 만하다. 통영을 본고장으로 하는 나전칠기는 1960~1970년대 부산으로 넘어왔는데, 부산에서도 그 본거지가 광복동과 대청동에서 점차 좌천동으로 넘어왔다는 것이다. 좌천동이 당시 발달하는 교통 요지였고, 일제강점기 이래 제재소가 번성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좌천동은 1980~1990년대 전성기를 구가하면서 100여 곳의 가구점으로 빽빽했고 그중 나전칠기 전문 매장은 30여 곳에 이르렀다. 이곳에 인생을 묵묵히 바친 장인들이 많았다. 섭패공 이덕수, 절삭공 이일환, 나전장 강정원, 칠장 김정중과 김관중, 두석장 임관섭…, 그들에게 경의와 헌사를 바쳐야 한다고 한다.

<낙동강 하구 재첩마을과 재첩잡이>도 반복과 교차의 현장 조사를 통해 1940년대부터 현재까지 낙동강 재첩 80년사를 그렸다. 낙동강 재첩 역사는 3개 시기로 갈린다. 1기는 1940~1960년대 낙동강 동쪽의 하단·엄궁·감전·삼락을 중심으로 재첩 마을이 형성된 이후, 점차 낙동강 서쪽의 염막·송백·진목·작지로 확산된 시기였고, 2기는 1968~1987년으로 재첩이 일본에 수출되면서 낙동강 하구 전역으로 재첩잡이가 확대된 전성기였다. 3기는 1987년부터 현재까지로, 하굿둑이 만들어지면서 재첩잡이가 하굿둑 안팎으로 나뉘고 굉장히 위축된 시기다. 물살이 세고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 사는 재첩은 현재 하굿둑 개방 실험이 진행되는 가운데 바야흐로 막힌 강이 제대로 흐르기를 바라고 있다고 한다.

셋째 시사점은 부산시나 구·군들이 부산과 지역을 재발견하는 예산 배정과 시스템을 갖춰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 측에 따르면 주제별 조사 보고서 5권의 집필·출간비는 1억 원이 훨씬 넘는다. 영도 보고서 5권까지 합치면 크게 볼 때 3억 원 정도의 예산이 들었다. 부산이라고 이런 의욕적 작업을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넷째 이들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통영이 나전칠기 본향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졌으나, 부산 좌천동이 1970년대 이후 통영보다 더한 나전칠기 메카라는 사실은 덜 알려져 있다. 마침 부산 동구에서 ‘공예박물관 설립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 하니 좌천동의 명성과, 삶을 묵묵히 바친 숱한 장인들의 노고를 제대로 기록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한편, 주제별 보고서 5권의 내용도 국립민속박물관 홈페이지를 통해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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