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부산공동어시장 위판장의 열악한 겨울나기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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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열 해양수산부 차장

지난겨울 부산의 가장 추웠던 날 최저기온은 영하 5도였다. 찬 바닷바람이 조금이라도 성을 낼라치면 체감온도는 다시 5도 이상 훌쩍 떨어진다. 그러나 겨울밤 내내 불이 켜진 부산공동어시장 위판장에선 무심한 칼바람을 원망할 시간도 없다.

오전 6시부터 열리는 경매를 위해 부산항운노조 부녀반은 밤새 생선을 부리고 나눈다. 매일 밤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까지 일하면서, 쉬는 시간이라고는 고작 야식 시간 20분과 화장실 가는 시간뿐. 얼음 덩어리 같은 생선을 일일이 손으로 분류할라치면 얼어 버린 손마디는 감각을 잃는다. 작업 막바지에 잠시 위판장에 나온 공동어시장 직원은 손에 든 업무철에 작업량을 기입하는 것조차 “손이 얼어 글씨가 제대로 써 지지 않는다”고 한다. 밤새 일하는 사람들 사정이야 더 말해 무엇할까.

8시간 고된 업무를 마친 부녀반은 샤워도 못한 채 버스에 오른다. 추위에 얼어붙었던 신경들이 풀리기 시작하면서, 그제서야 몸에서 나는 생선 비린내가 느껴진다. 새벽 버스 승객들의 눈총도 함께…. 송구한 마음에 때론 여럿이 십시일반해 택시를 타기도 하지만, 늘 택시를 타기엔 지갑 사정이 빠듯하다.

이렇게 하룻밤을 새워 받는 노임은 얼마일까? 올해 기준으로 정 조합원이 8만 4800원, 임시 조합원이 7만 2500원을 받아간다. 정부가 정한 올해 최저시급은 8590원이다. 야간 8시간이면 10만 원이 족히 넘는다. 대형선망수협 측은 도급제로 임금을 적용해 온 까닭에 최저임금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한다. 최저임금 적용 여부를 떠나 수년째 불황을 겪는 선망업계로서는 현재의 임금을 크게 올리는 것도 쉽지 않다.

일은 고되고 벌이는 부족하니, 일하려는 사람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절반 가까이 줄어든 인원 공백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메웠다. 그러나 이젠 외국인 노동자를 쓸 수도 없다. 올 초 부산지방노동청이 부산항운노조에 외국인 노무 공급을 중단하라고 지적했기 때문이다. 당장 다음 달 고등어 성어기에 들어서면 위판업무 차질은 불가피하다.

시장 논리대로라면, 노동력 공급이 수요에 미치질 못하니 임금은 자연히 올라가고 수요와 공급은 스스로 균형을 맞춰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마른 수건을 아무리 쥐어짜도 올려 줄 임금이 없다. 수익 구조가 맞지 않으면 도태되는 것도 시장의 논리다? 부산공동어시장의 위판 업무가 마비돼 안정적인 수산물 공급이 무너지면, 그 피해는 수산업계를 넘어 서민들 밥상에 고스란히 미친다.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정부 등 공공의 개입은 필수적이다. 누구보다도 시장을 못 미더워하는 것이 현 정부 아니던가? 부동산 시장을 못 믿어 스무 번 넘는 대책을 내어놓은 것이 이 정부다.

현재로선 위판업무 마비나 열악한 근무조건을 개선할 여력이 대형선망업계에도, 항운노조에도, 부산공동어시장에도 없다. 정부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우선 외국인 노동자 공급이 가능하도록 법적 제재를 풀어 당장 우려되는 위판 업무 마비를 막아야 한다. 그리고 이와 함께 열악한 부녀반의 근무환경 개선을 위한 지원 방안도 고려해야 할 일이다. 다가올 겨울, 부녀반 아주머니들이 지난해보다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일할 수 있기를 바라 본다. 몸도 마음도. bell10@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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