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옛 한나라호의 새 항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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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15일 광복절 아침. 청년 2명이 헤엄을 쳐 독도에 도착했다. 육지에서 독도까지 220km를 수영으로 횡단한다는 목표로 경북 울진군 죽변항을 떠난 지 48시간 30분 만이었다. 독도 선착장이 보이는 해상의 배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가수 김장훈과 덕성여대 서경덕 교수 등 일행은 부둥켜안고 만세를 불렀다.

당시 독도는 국제사회, 특히 동북아지역에서 ‘뜨거운 감자’였다. 광복절을 닷새 앞둔 10일 이명박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독도에 상륙했다. 하루 뒤인 11일엔 런던올림픽 축구 동메달 결정전에서 일본을 꺾은 한국 대표팀이 깜짝 ‘독도 세리머니’를 펼쳐 큰 이슈가 되기도 했다. 이런 민감한 시기에 진행된 한국 유명 가수 일행의 독도 수영 횡단 소식은 국내를 넘어 외신의 주요 관심사가 되기에 충분했다.

언론 보도가 유명인에게 초점이 맞춰진 탓에 크게 부각되진 않았지만, 당시 울진 죽변항에서 이들을 태우고 220km를 항해한 선박이 한국해양대 실습선인 ‘한나라호’였다. 1993년 건조된 한나라호는 102.7m 길이에 폭 14.5m의 3640t급 규모로 실습생과 선원, 교수 요원 등 최대 202명을 태울 수 있다. 한국해양대 해사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은 2학년까지 이론 교육을 받은 후 3학년 때 실습선에 올라 국내외를 돌며 선장과 항해사, 기관사 등 전문 뱃사람으로 길러진다. 일반 상선과 달리 한나라호에 2곳의 선교와 기관실이 있는 까닭이다. 이런 이유로 한나라호는 ‘움직이는 바다 캠퍼스’로도 불린다.

한나라호의 활약은 해기사 양성에만 머물지 않았다. 연 100여 일의 실습 항해 외에도 지자체나 국가의 부름이 있으면 마다하지 않고 뱃고동을 울렸다. 1997년과 2002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KEDO 주도로 북한 경수로 원전 1호기 착공식과 콘크리트 타설 행사가 열렸을 때 다국적 대표단을 태우고 북한을 다녀온 배도 한국해양대 실습선 한나라호였다. 비록 경수로 건설을 통한 북한 핵 문제 해결이 실패로 돌아갔지만, 한나라호의 활약상은 지워지지 않는 역사가 됐다.

27년간 해양대국의 미래를 싣고 대양을 누빈 한나라호는 지난해 규모와 기능을 보강한 새 한나라호에 자리를 물려주고 퇴역했다. 잊힌 존재에 머물던 한나라호가 베트남에 공적개발원조로 무상 양여되면서 15일 부산항을 떠났다. 베트남의 해기사 양성 요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다. 옛 한나라호가 열어 갈 새 역사에 힘찬 응원을 보낸다. 김희돈 교열부 부장 happy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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