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A 컬렉션, 미술관 보고(寶庫) 들여다보기] 81. 역사에 동반되는 것들의 기록, 장샤오강의 ‘망각과 기억 no.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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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샤오강(1958~ )은 중국 아방가르드를 대표하는 현대미술 작가이다. 그는 중국 문화대혁명(1966~1976년)과 천안문사태(1989년),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혼재한 격동의 시대를 거치면서 중국 현대사를 겪는 중국인들의 기억들을 작품으로 풀어냈다.

특히 장샤오강 작가가 어린 시절 겪었던 문화대혁명의 충격은 특유의 감수성을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미술대학 시절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대한 반감은 이후 중국미술 ‘아방가르드 운동’의 주역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작품들은 격동의 현대사를 겪는 중국인들의 고뇌, 슬픔을 은유적으로 보여 준다. 대표적인 작품 ‘혈연’ ‘대가족’ 시리즈는 중국 사회의 가정집에 걸려 있는 오래된 가족사진을 우연히 발견하고 시작한 것이다. 작품 속 인물들은 대부분 공허하고 무표정한 표정에 여성, 남성의 구분조차 모호하다. 그러나 그 인물들의 시선을 마주하면 슬픔이 전해져 온다. 작품은 개인의 정체성이 지워진 가족의 모습을 통해 집단적 결속을 중시하는 중국 사회의 가치관을 드러낸다.

이번에 소개하는 작품 ‘망각과 기억 no.9’은 가족 시리즈 중 하나이다. 눈물을 머금은 붉은 얼굴의 아기가 누워 있다. 그리고 손에는 혈연을 상징하는 가느다랗고 붉은 실이 감겨 있다. 붉은 실은 캔버스 밖으로도 뻗어 나가는데, 조상이나 그림 속에 나타나지 않은 가족과의 연결까지도 의미한다. 화면 속 아이는 한 명이지만 실로 연결된 가족이 존재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상처를 상징하는 얼룩의 흔적이 얼굴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

한 가족의 일원인 이 아이는 자유로운 존재를 꿈꾸겠지만 현실은 속박이 되어 집단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아이가 가진 운명의 비극성을 처연하게 보여 주는 작품이다.

박진희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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