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동네 책방이 살아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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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 문화부 문학종교팀장

올 초 부산 수영구 망미골목을 취재 차 찾은 적이 있다. 망미골목을 중심으로 ‘책방동주’ ‘비온후’ ‘책방한탸’ ‘비비드’ ‘해피북스데이’ 등 동네 책방 5곳이 모여 있었다. 동네 책방이 이처럼 가까운 거리에 모여 있는 것은 보수동책방골목을 제외하곤 그동안 보지 못한 신선한 풍경이었다. 직접 들른 동네책방들은 저마다 개성이 넘치고 색깔이 뚜렷했다.

대학 생명과학과 교수가 운영하는 ‘책방동주’는 국내 1호 자연과학 서점답게 자연과학 전문서적, 동식물에 관한 그림책과 단행본, 식물도감과 원서들을 보유했다. 여행 전문 서점인 ‘비온후’에서는 여행, 건축, 지역, 인문학 관련 책들을 볼 수 있었다. 감각적인 외관 디자인으로 눈길을 끈 ‘책방한탸’는 문학, 철학, 예술 등 인문학 서적으로 빼곡했다. 페미니즘 작가가 운영하는 ‘비비드’는 페미니즘, 비건 관련 책과 퀴어, 페미니즘 관련 굿즈를 무인 판매하고 있었다. 캐릭터 디자이너가 주인인 ‘해피북스데이’는 그림책 전문책방으로 그림책, 시집, 일러스트, 에세이 분야 독립출판물을 선보였다. 이 동네 책방들은 특정 분야 책을 위주로 전문화하거나 주인 취향을 담은 책을 골라 소개하는 큐레이션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망미골목 5곳 등 부산지역 30여 곳 운영
책 파는 것 넘어 책과 만나는 방법 제안
지역생활·독서문화 커뮤니티 중심 역할
유통문제 개선, 도서정가제 유지 등 과제

망미골목 동네 책방들은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문화 사랑방 역할을 충실히 했다. 생태 스터디 모임·심야책방(책방동주), 책방영화제·본 책 나들이(비온후), 글쓰기 모임(책방한탸), 원데이 클래스(해피북스데이), 자서전 쓰기(비비드) 등을 펼치며 대중과 소통하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불과 1~2년 전에 망미골목에 자리를 잡은 동네 책방 5곳은 어느덧 지역커뮤니티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예전에 취재를 갔던 어린이전문서점 ‘책과아이들’(부산 연제구 거제동)도 기억에 남는다. 23년 역사를 지닌 이 동네 책방은 ‘가려서 뽑은 좋은 어린이책’ 1만 7000여 권을 소장하고 있었다. 어린이책으로는 전국 최대 보유량이다. 이 책방 주인들은 ‘책방이 단순히 책을 파는 공간이 아니라 책을 매개로 아이를 키우는 장소’라는 운영 철학을 갖고 있다. 북콘서트, 축제, 강연, 연극, 그림책 감상 등을 통해 아이들이 학습을 위한 독서를 넘어 즐겁게 책을 읽는 교양인으로 성장하도록 돕고 있다. 이처럼 동네 책방은 지역생활·독서문화 중심 공간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현재 부산에는 30여 곳의 동네 책방이 있다. 동네 책방 기준은 뭘까. 우선, 학습서를 팔지 않는 서점이어야 한다. 카페 비중이 지나치게 큰 데 비해 책을 소규모로 진열하거나 영업일이 주 1~2일에 불과하면 동네 책방 범주에서 빠진다. 독립출판을 다루는 독립서점은 동네 책방에 포함된다. 부산지역 동네 책방의 80%는 현행 도서정가제가 도입된 2014년 이후 생겨났다고 한다. 현 도서정가제는 무분별한 가격 경쟁을 막기 위해 책값의 15%까지만 할인을 허용한다. 도서정가제는 부산에 개성 넘치는 동네 책방 창업을 활발하게 유도하는 제도적 기반이 됐다.

전국적으로 범위를 확대해도 비슷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 따르면 2015년 101개에 불과했던 독립서점은 올해 650개로 크게 늘었다. 신생 출판사도 2013년 4만 4148개에서 2018년 6만 1084개로 증가했다. 신간 발행 종수도 2013년 6만 1548종에서 2017년 8만 1890종으로 늘었다.

하지만, 최근 정부가 도서정가제 개악 움직임을 보이면서 동네 책방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동네 책방들은 도매상으로부터 책정가의 70~75%를 현금으로 주고 산다. 대형서점과 온라인서점보다 훨씬 높은 가격으로 책을 구매하기 때문에 출발선 자체가 다르다. 무료배송 서비스까지 하는 온라인서점은 최대 40%에 가까운 할인율을 제공하는 셈이다.

여기에 책 유통 문제도 동네 책방의 어려움을 가중한다. 동네 책방은 출판사와 직거래하기도 하지만, 도매상으로부터 책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 한 부산지역 동네 책방 대표는 “도매상이 온라인서점과 대형서점 위주로 먼저 책을 공급하는 경우가 많아 규모가 작은 동네 책방은 뒷순위로 밀린다. 책을 주문했는데 약속 날짜보다 3~4일 늦게 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라고 어려움을 호소한다.

동네 책방은 문화적 공공재인 책을 지역 주민과 연결해주는 문화공간이다. 책을 파는 것에 그치지 않고, 책을 만나는 가장 가까운 방법을 제안하는 곳이다. 작가, 출판사, 독자 등 출판 생태계를 선순환하게 하는 실핏줄 역할을 하는 곳이다. 동네 책방이 살아야 일상의 품격이 높아진다. 책 유통 문제 개선, 도서정가제 유지 등 동네 책방 활성화 방안 마련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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