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비를 그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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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순 소설가

집 근처에 걷기 좋은 수목원이 있다. 여느 때라면 수목원과 연결되어 있는 부산박물관도 들렀을 텐데 이번에는 박물관은 빼고 수목원으로 곧장 갔다. 코로나19 때문에 박물관은 무기한 휴관이었다.

연꽃 밭이 있는 연못 다리를 지나면 긴 도랑이 나왔다. 도랑가에 우거진 갈대와 나무들이 도랑물과 어우러진 풍경은 한적한 시골 길 같았다. 커다란 태풍 두 개가 지나갔는데도 갈대들은 무성했다. 갈대줄기는 곧 꽃을 터뜨릴 듯이 희끗했다. 조만간 도랑가는 은빛으로 물들겠지 하고 생각하면서 걷는데 갑자기 앞이 컴컴해졌다. 모처럼 햇살이 맑고 하늘이 파랬던 전형적인 초가을 날씨였기에 집을 나서면서 우산 따위는 챙기지도 않았다.


산책 중 갑자기 쏟아지는 비 만나
정자에 삼삼오오 모여 날씨 타령
그 와중에 재난문자는 계속 도착

30여 분 지났으나 비는 멎질 않아
코로나19 같은 돌발에 꽁꽁 묶인 꼴
‘돌발’은 앞으로 점점 강도 세질 것



쏴아아. 팽나무 앞을 지날 때 비가 쏟아졌다. 왼쪽에 정자가 있어 잠깐 비를 긋고 갈까 하다가 곧 그칠 거라 생각하고 계속 걸었다. 그러나 빗줄기는 점점 굵어졌다. 셔츠는 금세 젖었고, 빗물 젖은 흙이 튀어 운동화도 더러워졌다. 물레방아 옆 정자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팽나무 근처 정자에서 걸음을 멈추었다면 그토록 젖지 않았을 거다.

물레방아 옆 정자에는 아주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비를 긋고 있었다. 나는 정자 기둥에 붙은 푯말에 적힌 대로 신발을 벗고 정자 마루에 올라섰다. 한 아주머니가 틔워주는 자리에 앉아 손수건으로 목과 머리를 닦았다. 도랑가를 걷고 무궁화 밭을 지나 유엔묘지 안까지 걸으려는 생각들은 싹 가셨다. 비가 언제 멎을지, 그냥 비를 맞고서라도 집까지 걸을까 하는 생각들만 머리에 차 있었다.

‘오늘 비 온다는 말은 없었는데.’ ‘요새는 일기예보도 잘 안 맞더라 아잉교. 그래서 나는 그런 거 아예 안 봅니더. 그 좋은 날씨에 누가 비 온다는 생각이나 했을라고예.’ ‘장마도 징그럽도록 길더만 그것도 모자라 시도 때도 없이 비가 오니 원 참.’ ‘우리 집 양반이 우산 들고 나가라 했는데 설마 비가 올까봐, 하고 무시하고 나왔더만.’ 모인 사람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했다. 그들은 말을 하면서도 아래로 처지는 마스크를 연신 위로 끌어올렸다. 사람들은 이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집을 나서면 으레 마스크를 쓰고 사람들이 밀집한 곳에서는 서로 떨어지려고 애썼다.

그 와중에도 스마트폰에 재난경보문자는 계속 떴다. 몇 월 몇 일과 몇 일 사이에 어느 음식점이나 건물에 방문한 사람들은 근처 보건소에 방문상담을 하라는 메시지였다. 메시지에 뜬 가게들은 칼국수 집, 돼지국밥 집, 삼계탕 집 등, 하마터면 나도 갔을 뻔 했던 음식점들이었다. 주변 곳곳에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가 매설되어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삼십여 분이 흘렀지만 비는 멎지 않았다. 멎기는커녕 바람까지 불어 빗줄기는 더 거세졌다. 으스스 추웠다. 뜨끈한 커피 생각이 간절했다. 비를 좀 맞더라도 큰길까지 나가 커피숍에서 비를 긋는 게 나았다는 후회는 해 봐야 소용없었다. 살면서 비(雨)라는 돌발을 한두 번 겪은 것도 아니면서 정자에 웅크리고 앉아 빗줄기를 헤아리며 비가 멎기를 기다린 게 미련스럽기만 했다.

우리는 올해 초부터 시작한 코로나19라는 돌발에 발이 꽁꽁 묶여 있다. 돌발은 곧 멎을 줄 알았지만 점점 강도가 세지고 있다. 앞으로 모두 자가 격리를 해야 하는 때가 안 닥치리라는 보장은 없다. 코로나19가 차라리 나았다고 여길 만큼 끔찍한 돌발이 생기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더 없다. 그땐 비를 맞고서라도 수목원을 거닐 때가 좋았노라 그리워하겠지. 나는 운동화를 꿰신고 정자 밖으로 나왔다. 그나마 폭우가 아니라서 다행이라 여기면서 집을 향해 빗속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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