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정장 대여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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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범(1859~1897). 구한 말 개화파 사상가다. 갑신정변을 일으키고 갑오개혁을 이끌었으나 만리타향에서 객사한, 풍운아이자 비운의 인물이다. 그는 조선 사람으로서 독특한 이력을 가졌다. 미국 시민권을 얻었으며 케네스 서라는 미국식 이름도 가졌다. 기독교 성경을 우리말로 번역하기도 했다. 그중 일부인 요한복음 3장 16절의 친필 번역 원고가 2016년 공개됐다.

거기에 더해, 서광범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양복을 입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1881년 그는 신사유람단의 일원으로 찾은 일본에서 한 양복점을 방문한다. 서양인들이 입는, 요상하게 생긴 옷을 요모조모 살피던 그는 즉석에서 구입, 그 자리서 입은 채 귀국한다. 그 모습을 본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등 개화파 동지들은 처음엔 놀랐으나 곧 자신들도 두루마기를 벗고 양복을 입게 된다.

양복은 ‘오랑캐 옷’이라고 비난받았으나 점점 퍼졌고, 1895년 단발령이 내려지면서 공인되기에 이른다. 이후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산업화 시기를 거치며 양복은 일상에서 격식을 갖출 때 필수적인 옷차림으로 정착했다. 경조사 등 큰일이 있을 때면 으레 양복을 입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양복은 자연스레 ‘정장’으로 불리며 집집마다 몇 벌씩은 꼭 갖추고 있어야 하는 옷으로 인식됐다.

정장(正裝)의 말뜻은 ‘격식을 갖춘 정식 복장’이다. 한복도 충분히 정장일 수 있는데도 굳이 양복만이 정장으로 통하게 된 건 우리 사회에서 그만큼 양복이 권위를 갖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정장은 여성보다 상대적으로 남성에게 더 밀접했다. 남성에게 가장 이상적인 멋을 부여하는 ‘과학의 옷’으로 불렸다.

그런데 이런 정장의 시대가 점점 끝나 가는 모양이다. 격식보다는 자유로움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확산하면서 정장은 이제 품격이 아니라 ‘꼰대’의 상징으로 취급된다. 이 때문에 실제로 의류 매장에서 정장 수요는 근래 급감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부산의 한 백화점에 정장을 대여하는 매장이 문을 열었다. 5만 원이면 예복용 고급 정장을 빌릴 수 있다. 그동안 정장 대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소규모 업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는데, 마침내 대형 백화점까지 진출한 것이다. 이제 정장은 구입해 놓는 옷이 아니라 빌려 입는 옷이 됐다. ‘남자를 가장 남자답게 만드는 옷’이라는 정장이 이렇게 퇴물 신세가 됐다. 세월 무상함을 느끼게 된다.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세상사 모든 게 그러하니까.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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