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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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민 종합건축사사무소 효원 대표

어쩌다 보니 눈만 보고 다니게 되었다. 마치 히잡을 쓴 여인들과 같이 사람들은 눈 외에 모든 것을 가리고 다닌다. 개성 표출의 수단은 눈이 유일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여성들의 눈 화장이 부쩍 짙어진 것일까? 지하철이고 거리이고 온통 눈만 번뜩거린다.

그 덕분이라 할까? 가뜩이나 허약한 현대인들이 자신을 감추기가 무척 용이해졌다고 생각한다. 반면, 잃은 것은 무얼까? 수 세기에 걸쳐 히잡을 벗어 던지려던 아랍 여인들의 심정을 깊이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개성의 은폐란 분명 큰 장애물이었을 테다. 제도적이든, 또 다른 무엇이든.... 왜냐하면 인간도 본래부터 발가벗은 모습이 자신의 정체성이었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대 유일한 개성 표출은 ‘눈’
지하철과 거리엔 사람들 눈만 번뜩
미학적으로 완벽하고 마음도 끌어

동물 눈에 사람 빗대는 엉뚱한 상상
쥐 눈은 변명, 고양이 눈은 폭력성 은폐
슬프고 촉촉한 개의 눈은 유약한 느낌

아무튼 지하철 안에서 흘낏 사람들을 살피면, 온통 눈밖에 보이지 않는데, 그런 가운데에서도 나는 사람들의 개성을 구별해 보려고 애쓴다. 그렇다고 하여 내가 관음증에 걸린 정도는 아니니 내게 잠시 관찰당한 사람들은 부디 용서하시길.

자세히 보면, 사람들의 눈이 참 예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가 마치 소의 슬픈 눈을 보고 어떤 감정을 느꼈듯이, 사람의 눈 또한 참 맑고 순수하게 생겼다. 굳이 화장하지 않더라도 그것은 미학적으로 완벽 그 자체이다. 형태적 균형을 완벽히 갖추었으면서도 늘 상황에 맞추어 자신을 바꾸는 진취성을 가졌다. 무엇보다도 사람의 마음을 당겼다 놓았다 하는 마력이 있다. 그러다가 깊이 빨아들이기도 한다.

뜬금없이 생각이 번진다. 그렇다면 동물의 눈은 어떠할까? 그것들의 눈에 사람의 그것을 빗대어 보는 엉뚱한 상상을 한다. 사람의 눈에 비하여 훨씬 솔직한 그것들의 처지가 매우 억울하리라 여기긴 하지만.

쥐의 눈. 이놈의 눈은 덩치만큼이나 작다. 하지만 눈치를 보는 데에는 어느 큰 눈에 못지않다. 때론 크기 때문에 놀림을 받기도 하나, 그 와중에도 좀처럼 제 속을 들키지 않을 만큼 작게 실눈을 하고 쉴 새 없이 구멍을 들락거린다. 오직 제 배 속을 채우는 일이 천성인 놈들이다.

고양이의 눈. 이놈은 절대 남과 눈을 일대일로 마주치지 않는다. 항상 제 입장에서 동공의 크기를 조절하며 상대를 몰래 관찰한다. 이놈의 눈이 무섭다는 것을 사람들이 인정할 때는 그 폭력성이 잠시 드러날 때이지만, 평소 이놈은 자신의 폭력성을 교묘하게 은폐한다. 이놈들의 최종 목표는 타자를 지배하는 것이다.

개의 눈. 이놈의 실수는 제 덩치를 너무 과신한다는 데에 있다. 하지만 왕왕 덩칫값을 못하고 위의 두 놈에게 당한다. 이놈의 눈을 자세히 보면 그 이유가 좀 더 명확해진다. 어이없게도 이놈의 눈은 항상 슬프고 촉촉하게 젖어있다. 슬픈 동공 위의 예쁜 눈썹마저 유약함에 한몫을 한다. 이놈의 천성이 복종에 있음은 인간과의 관계에서 증명되었다.

사람이라고 하여, 굳이 동물의 눈을 안타까워하거나 비하해야 할까? 알고 보면 사람들의 세상은 그보다 훨씬 교묘한 눈들이 난무하는 세상이다. 법정과 언론을 들락거리며 제 변명에 급급한 쥐의 눈, 불리하면 숨었다가 기회를 보아 독선적 담화를 발표하는 고양이의 눈, 그들이 진실로 눈 마주쳐 주기를 기다리는 애처로운 개의 눈.

문득 거울을 통하여 나의 눈을 바라본다. 나의 눈은 무엇을 닮아야 할까? 그나마 개의 그것과 닮기를 한없이 다짐한다. 하지만 나마저 최종적으로 개의 눈을 비하해 버리지 않을까 걱정이다. ‘개 같은 세상’. 착한 시민이 큰 힘을 가진 세상이 왔다고 말들을 하지만 자신할 수 없는 일. 하물며 사람들이 눈 외의 모든 것을 가린 요즈음, 진실은 더욱 오리무중일 테다. 하지만, 나는 코로나팬데믹이 끝나더라도 계속 사람들의 눈을 관찰하련다. 눈. 천성의 선을 지닌, 깊디깊은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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