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 60명을 통해 통찰한 현대사 100년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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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한국 지성의 모험 / 김호기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한국적인 것으로 보편성에 이른 씨알 사상가 함석헌, 위대한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 사랑과 정의의 종교사상가 김수환 추기경, 동양 고전을 통해 인간 해방과 성찰적 진보의 연대를 도모한 신영복. 부산일보DB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한국적인 것으로 보편성에 이른 씨알 사상가 함석헌, 위대한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 사랑과 정의의 종교사상가 김수환 추기경, 동양 고전을 통해 인간 해방과 성찰적 진보의 연대를 도모한 신영복. 부산일보DB

우리 현대사를 이끌어 온 힘은 무엇이고 그에 대한 통찰은 어떠했는가. 〈현대 한국 지성의 모험〉은 우리 현대사 100년의 지성사를 60명과 그들의 저서를 통해 통찰한 책이다. 사회학자인 김호기 연세대 교수가 썼다. 김구 안창호 여운형, 그리고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등 정치인도 들어 있다.

김호기가 보기에 우리 현대사 100년을 이끌어온 시대정신은 세 가지다. 민족해방, 산업화, 민주화다. 민족해방에 순정한 열망을 품었던 이들이 이승만 김구 안창호 여운형이다.


종교·철학·문학·역사학·자연과학 등

다양한 방면 지성과 그들의 저서 담아


저자는 해방 이후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관심을 모은 정치인을 박정희와 노무현으로 꼽고 있다. 박정희는 경제적 산업화의 상징이고, 노무현은 정치적 민주화의 상징이라는 거다. 박정희는 조국 근대화의 경이로운 결과를 가져왔으나 유신체제로 그 정치적 정당성을 많이 잃었다. 노무현은 1987년 시작된 민주화 시대를 절정으로 이끌었다. 세계적으로 힘든 정세 속에서 노무현은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시대정신을 만들었다.

김영삼은 정치적 측면에서 민주화 시대를 비로소 열었으며, 김대중은 열정 책임감 균형감각으로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역사는 결국 발전한다’는 명제를 삶으로 증명한 정치인이다.

지성의 프리즘은 다양하다. 종교 철학 문학 역사학 사회학 자연과학 등 다양한 방면에 걸쳐 있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쓴 함석헌은 100년 현대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사상가로 꼽힌다. 보편적이면서도 가장 한국적인 사상을 펼쳤기 때문이다. 장일순은 생태주의와 공동체 사상을 선구적으로 일궜다. 그에게는 동학 유학 노자 기독교 간디사상이 하나로 녹아 있다. 특히 최시형의 동학사상이 심원하게 자리 잡고 있다. 장일순의 사상적 적자가 〈녹색평론〉의 김종철이었다.

〈무정〉의 이광수는 문제적이며 양가적이다. 그에게 제국주의 일본은 억압의 주체인 동시에 선진 문명의 모델이었다. 그래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친일로 돌아섰던 것이다. 저자는 이광수 식의 양가감정은 서구(미국)에 대한 양가감정으로 바뀌어 현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 것을 고수하면서 보편성을 얻을 수 있는 것의 추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경리의 〈토지〉는 100년 현대사의 으뜸가는 문제작으로 보편성을 성취했다. 신영복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올바른 인식뿐 아니라 위로와 공감에 기초한 연대의식의 사상을 우리에게 안겨줬다.

압축 근대화, 급속한 산업화로 치달으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다. 왜 사느냐,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에 대해 답을 찾으려 한 종교사상이 함석헌의 기독교사상, 김수환의 천주교사상, 성철의 불교사상이었다. 이 책에서는 성철을 다루지는 않았으나 ‘백일법문’을 통해 호활하게 드러난 그의 불교사상은 깊고도 깊다. 문학평론가 김윤식은 한국 근대성 탐구를 추구한 가장 탁월한 학자였으며, 〈광장〉의 최인훈은 좌와 우를 아우르는 중도적 자유주의를 취한 ‘남북조 시대의 예술가’이자 전후 최대의 작가다.

우리 현대사는 참으로 험한 시절을 거쳐왔다. 한국전쟁 이후 1987년 민주항쟁까지 진보의 정치적 시민권은 없었다. 지성이 극도로 위축됐던 거다. 거기에 출구를 냈던 지성인들이 있다. 자유의 시인이자 자유의 사상가였던 김수영, ‘사상의 은사’라는 찬사를 받은 리영희, 형평성을 추구한 ‘민족경제론’을 펼친 박현채, 민중 담론의 지평을 열었던 한완상 등의 지성적 고투가 있었다.

광복 이후 대표적인 역사학자는 이기백 김용섭 강만길이다. 이기백은 ‘한국 역사학의 랑케’로 식민주의사관을 넘어섰으며, 김용섭은 ‘한국사학의 숨은 신’으로 내재적 발전론의 푯대를 세웠다. 강만길은 시대에 맞선 대표적 지식인으로 우리를 짓누르는 분단시대를 문제화시켰다.

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지성 3인도 소개해놨는데 재일 디아스포라 지식인 강상중, 신자유주의와 불평등을 경계하는 경제학자 장하준과 미국에서 활동하는 사회학자 신기욱이 그들이다. 신기욱은 한국의 ‘종족적 민족주의’의 양면성을 갈파했다. 한용운 이육사 조세희 김우창 백낙청 최장집 정운찬 유홍준 이효재 석주명 최재천 등도 책의 항목에 포함돼 있다.

현대사 100년, 그 미래가 향하는 곳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더 많은 민주주의, 골고루 잘 사는 사회다. 김호기 지음/메디치/520쪽/2만 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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