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수의 지금 여기] 오만과 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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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전례 없는 절제와 차분함. 코로나19 엄습 후 처음 맞은 올해 추석 풍경을 축약하는 말이다. 이른바 ‘추캉스’ 족의 행태를 염려하는 시선이 없지 않았으나 여느 명절 분위기와는 분명 달랐다. 그렇게 ‘나홀로’의 시간이 길게 주어졌다. 이럴 때 인간은 뭔가를 돌아보게 된다. 앞길을 채근하던 시선을 거두어 지난 세월을, 자신의 내면을 살피는 쪽으로 돌리는 것이다. 되돌아봄은 근본과 본질에 대한 각성을 동반한다. 육신에 침투한 바이러스가 정신의 문제로 전이되고 변이를 촉발하는 특이한 경험을 우리는 지금 겪고 있는 중이다.

이번 연휴에 가장 많이 호명된 이름은 놀랍게도 소크라테스다. 서구 문화의 철학적 기초를 마련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 시발점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다. 얼마 전 북한 김정은 위원장을 ‘계몽군주’로 비유했다가 호된 비판의 화살을 맞은 유 이사장은 지난달 30일 한 유튜브 방송에서 ‘계몽군주는 김 위원장을 칭송하는 말이 결코 아니다’는 취지의 해명을 하면서 ‘계몽군주라고 한 걸 비판한 분들은 2500년 전 아테네에 태어났으면 소크라테스를 고발했을 사람들’이라는 견해를 곁들였다. 알다시피, 신을 믿지 않고 청년을 선동·타락시켰다는 이유로 고발돼 사형선고를 받은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는 말을 남기고 독배를 들이켠 일화로 유명하다. 비판자들은 다시 날을 세웠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유시민은 자신을 비판한 이들을 아테네의 어리석은 민중에 비유했지만, 유 씨와 달리 소크라테스는 권력에 대한 아부를 경멸했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도 진리의 보편성과 객관성의 옹호라는 최소한의 수준도 없다는 점에서 “유시민은 소크라테스가 아니라 소피스트”라고 독설했다.

추석 연휴 동안 호명된 소크라테스
나훈아 ‘테스 형’ 타고 전국 들썩
소신 발언 놓고 정치권은 ‘아전인수’

무지와 오만에 대한 자각을 위해
죽음도 불사한 고대 철학자의 실천
부끄러운 정치권이 배워야 할 터


이렇게 난데없이 소환된 소크라테스는 추석 전날과 지난 3일 KBS TV가 방영한 나훈아 콘서트를 통해 전국에 널리 퍼진다. 신곡 ‘테스 형’이 그 주인공이다. ‘아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아 테스 형 소크라테스형 사랑은 또 왜 이래/.../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 형.’ 세월의 무게감을 느끼는 한 인간의 진솔한 심정과 특유의 노랫말, 대중적 감성이 절묘히 버무려진 노래다. 나훈아가 세상 떠난 아버지를 생각하며 쓴 곡이라는데, 지금 온 나라가 이 노래로 떠들썩하다.

그런데 콘서트 말미에 나온 나훈아의 발언이 정쟁에 휘말렸다. “국민 때문에 목숨 걸었다는 왕이나 대통령을 본 적이 없다” “두고 보세요. KBS는 앞으로 거듭날 겁니다” 등등. 이를 두고 야권은 현 정부와 공영 방송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했다. 반면 여권은 나훈아 발언에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들이 고개를 쳐들고 있다는 식으로 반박했다. 나훈아 발언의 핵심을 놓고 “현실 비판이다” “민주주의를 말한 것이다” 설전이 이어졌다. 진실은 정작 나훈아만이 알 텐데, 정치권은 나훈아 신드롬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는 조급함을 보였다. 노랫말에 나오는 ‘너 자신을 알라’는 명언조차 당리당략의 차원에서 소비되는 것이다. 우리 정치판에는 진실을 감춘 허망한 말들이 횡행한다. 진실을 꿰뚫으면서도 반성의 겨를을 품은 말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맥락을 따지는 일 따위엔 아예 관심도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시간과 정성을 기울이지 않으니 그것은 곧 폭력이 된다.

소크라테스가 그렇게도 깨우쳐 주고 싶어 한 건 바로 이런 무지와 오만이다. 내가 모른다는 걸 알아차리도록 하는 것. 그는 이를 위해 일생을 바쳤고 죽음마저도 진리를 세우는 방편으로 삼은 실천적 지성인이었다. 소크라테스의 법정 진술을 그의 제자 플라톤이 기록한 고전 중의 고전이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다. 그의 마지막 말은 이렇다. ‘우리는 각기 자기의 길을 갑시다. 나는 죽기 위해서, 여러분은 살기 위해서. 어느 쪽이 더 좋은가 하는 것은 오직 신만이 알 뿐입니다.’ 무지를 일깨우기 위해 죽음도 불사하는 정신. 겉만 요란하고 속은 텅 빈, 변명으로 점철된 이 땅의 거짓된 목소리들을 부끄럽게 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정치가 싸워야 할 대상은 정치가 아니다. 경건함이 깃들 수 없는, 그것조차 아예 무엇인지 모르는, 무지와 오만으로 가득 찬 마음이다.

나훈아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엇갈릴 테지만, 그는 분명 '가황'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예술가다. ‘할 수 없는 것은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그는 존재의 필연성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 쉽게 말해 진심이 발동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다. 그를 움직이는 것은 오만과 무지가 아니라 몸으로 체득한 진실이다. 몸으로 얻은 체득은 밑바닥 진실, 마지막 진실이다. 세상의 변화를 꾀하는 힘이 여기서 나온다. 리더의 역할이란 어떤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이즈음이다.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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