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원 칼럼] '코로나 정치', 승자와 패자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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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장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미 대선이 점입가경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11월 초에 열리는 역대 대선에서 막판 판도를 바꾼 이벤트를 뜻하는 ‘옥토버 서프라이즈’(October surprise)가 공화당 후보로 나선 현직 대통령일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터였다. 미 대선 가도는 ‘트럼프의 코로나 확진’ 이전과 이후로 확연히 달라지는 분위기다.

코로나바이러스가 갈 길 바쁜 트럼프의 발목을 잡았지만 선거 결과는 역시 뚜껑을 열어 봐야 안다. 현재로서는 백악관에 격리 중인 트럼프에게 불리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확진을 계기로 승리의 여신은 민주당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에게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시엔엔>(CNN)이 지난 1~4일 미 성인 1205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는 바이든 지지 57%, 트럼프 지지 41%로 격차가 16%포인트까지 벌어졌다.


11월 3일 미 대선 판도 확 바꾼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확진
미국은 물론 세계 혼란으로 이어져

코로나 정치적 이용은 위험천만
한국도 코로나 민심 직시해야
국민이 승리하는 정치 생각할 때



몹쓸 병에 걸린 데다 선거도 망치고 있는 트럼프로서는 억울하겠지만 자업자득인 측면도 크다. 코로나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안팎의 지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미국 우선주의’를 늘 강조하는 트럼프는 ‘중국 바이러스에 살아남은 무적의 영웅’을 꿈꾸며 국민들의 방역 경각심 해제에 일조했다. 그 결과 21만여 명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를 냈고, 자신의 목숨은 물론 정치적 생명까지 걸어야 할 판이다. 홍콩 딥날리지그룹(DKG)의 코로나19 안전도 순위에서도 독일과 한국이 각각 1위와 3위를 차지했지만 미국은 55위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미 대선은 지구촌 최대의 정치 이벤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의 도전이 심상치 않지만 그래도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팍스 아메리카’(Pax Americana·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평화)의 위력은 여전히 녹슬지 않았다. 세계의 무역 질서는 물론이고 군사적 질서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갈등과 분쟁의 해결사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미국인이 열광하는 영화 속 ‘슈퍼히어로’는 현실 속 ‘아메리카 퍼스트’ 그 자체다.

눈을 동북아로 돌리면 그 영향력을 실감하게 된다. 한국과 일본에 군대를 주둔 중인 미국은 동북아 질서의 수호자를 자처한다.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한 미국의 동북아 평화는 2차 대전 이후 꿋꿋하게 그 전통을 유지해 왔다. 북·미 회담이 진행되면서도 영향력은 줄지 않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트럼프의 확진 소식을 듣자마자 “당신과 영부인이 하루빨리 완쾌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는 친서를 보내기도 했다.

한반도의 남쪽인 한국으로 시선을 좁히면 미국은 늘 독립변수이자 상수다. 보수와 진보가 번갈아 정권을 잡고 있지만 한미 동맹은 남한 사회의 버팀목이었다. 성조기와 태극기를 함께 들고 시위에 나서고 남한 대통령을 구속하라는 백악관 청원도 서슴지 않는 보수 쪽은 말할 것도 없고 진보로 분류되는 노무현 정부가 이라크 파병에 나서거나 문재인 정부가 북미 대화에 공을 들이는 것도 변함없는 미국의 영향력을 증명한다.

이런 미국이다 보니 미 대선의 혼란은 고스란히 세계의 혼란으로 다가온다. 트럼프의 변고에서부터 대선 불복에 이르기까지 미 대선의 불확실성을 웅변하는 시나리오가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트럼프의 코로나 확진’ 이전과 이후로 달라진 세계 풍경이다. 과연 코로나의 힘이 세기는 센 모양이다. 다시는 코로나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강력하게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코로나 정치 시대’다. 코로나는 우선 강대국이든 약소국이든 나라를 가리지 않고, 대통령이든 시민이든 사람도 가리지 않는다. 세계를 지배한 서구문화의 진원지인 미국이나 유럽에서 코로나가 더 창궐하고 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하여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 등 권력자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 정치도 코로나 바람을 타고 있다. 7일 막 오른 국감에서 정치권은 코로나 과잉 대응과 집회·시위의 자유를 놓고 맞붙었다. 개천절 집회 때의 이른바 ‘재인산성’을 놓고 치열한 공방이 오갔다. 한글날인 9일 광화문광장에서의 군중집회도 논란을 가중할 전망이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국내 정치에서도 코로나 접근법에 따라 정파적 이해가 달라질 것이다. 더욱이 대선 전초전이라는 부산시장 및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당장 6개월 앞으로 다가온 마당에 코로나 대처가 민심의 바로미터가 될 공산이 크다. 누가 선거에서 승리하든 코로나 방역에 실패한다면 결국 패자는 국민이다. 눈앞의 승부에 집착하지 않는 통 큰 정치가 필요한 때다. 앞으로 선거는 계속되고, 백신 개발의 전망이 부재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국민은 살아나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fore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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