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식의 인문예술 풀꽃향기] 가을 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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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고신대 총장

아이쿠! 가을이다. 허둥지둥 헤매며, 아등바등 버티다 보니 벌써 한 해 끝자락이 코앞이다. 계절들이 다 그렇지만, 특히 가을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험상궂은 날씨가 계속되어 여름 장마가 참 질기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느새 선선한 바람이 불고 푸른 하늘엔 흰 구름이 두둥실 떠다니는 게, 가을이 모처럼 진면목을 보여 주고 있다. 19세기 화가 밀레이의 그림 제목처럼 정말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가을(Lingering Autumn)’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아무리 여름을 ‘참으로 위대한’ 계절로 회상을 했어도, 그 그림의 부제가 보여 주듯 가을은 ‘봄도 여름도 이만한 은총을 받지 못한 계절’이다.

가을은 옛 문사들의 더없는 문학적 글감
삶의 비애와 왕조의 몰락 등에 비유
다산 같은 조선 문인도 남다른 가을 사랑
가을 타는 마음, 현대라고 다르지 않아

하지만 가을이 모든 이들에게 은총의 계절로만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특히 시대의 흐름 속에 좌절감을 느꼈던 옛 문사들에게는 가을은 단연 비애의 계절이었다. 중국 문학의 절정기였던 당송의 시인과 문장가들의 시문에는 가을의 슬픔이 예외 없이 등장한다. 맹호연은 ‘세모귀남산(歲暮歸南山)’에서 수심에 가득 차 잠 못 이루는 가을밤(永懷愁不寐)을 읊었고, 두보는 ‘등고(登高)’에서 만리타향에서 유랑객으로 맞는 슬픈 가을(万里悲秋常作客)을 노래했으며, 한유는 ‘추회시(秋懷詩)’에서 자기 인생을 빗대어 가을날의 긴 밤과 짧은 낮(秋夜不可晨 秋日苦易暗)을 한탄했다. 어디 그뿐인가? 가을은 ‘추사(秋思)’에서 백거이에게는 쓸쓸한 기분의 계절(蕭條秋氣味)이요, ‘추성부(秋聲賦)’에서 구양수에게는 찌르륵찌르륵 벌레 소리만 들리는(蟲聲즉즉) 슬픈 소리의 계절이며, ‘적벽부(赤壁賦)’에서 소동파에게는 강 위로 불어오는 슬픈 바람(悲風)의 계절이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명말청초에 이르면 중국 문학사에 가을 문학의 르네상스가 일어난다. 나라의 몰락을 경험한 명나라 문인들 사이에는 유구하고 찬란했던 자신들의 왕조가 사라진 상실감을 가을의 조락으로 은유하는 추제시(秋題詩)가 유행했던 것이다.

중국이 이렇게 가을 시의 오랜 전통을 자랑해도 가을에 대한 사랑은 조선의 문사들을 따라갈 수 없다. 19세 초 이 땅에는 이런 가을의 모습을 그린 ‘가을의 문학’이 대거 등장한다. 그 중심인물은 단연 정약용의 장남 유산(酉山) 정학연(丁學淵)이었다. 다산은 그에게 가문이 이제 폐족되었으니 음풍농월의 작시보다는 면학과 농사일에 주력하라고 훈계를 했지만, 부친에게서 물려받은 문재가 어디 갈 리 없었다. 그는 유독 가을을 음미하고 읊조리는 데 집중했는데, 시선집 <선음(鮮音)>에 실려 있는 145수 가운데 무려 120여 수가 가을에 바쳐진 시이다. 가을 버들(秋柳) 20수를 필두로 가을꽃(秋花), 가을 풀(秋草), 가을벌레(秋蟲), 가을바람(秋風), 가을비(秋雨), 가을 등불(秋燈), 가을 달(秋月)을 두고 각각 10수씩이나 썼다. 이런 가을의 경물을 읊은 영물시(詠物詩) 외에, 가을 생각(秋懷), 가을 기분(秋興), 나아가 가을 선비(秋士) 등 가을의 감정을 노래한 추회시도 여러 편이다. 그 외에 중국 연경까지 필명을 날리던 다산의 외손 윤정기(尹廷琦)도 홍엽(紅葉), 추엽(秋葉), 풍엽(楓葉) 등 온통 가을 낙엽을 노래해 <홍엽전성집(紅葉傳聲集)>을 남기고 있다.

다산 일가의 이런 가을 사랑은 정작 다산 자신에게서 시작되었다. 동해안 장기에서 귀양살이할 때 가을 물상들에 대한 섬세한 관찰로 주옥같은 추회시 8수를 썼다. 가자미, 꽃게, 풀벌레 등도 시제로 삼았지만, 무엇보다 제비를 두고 적은 시가 인상적이다. ‘지지배배 지지배배 그 모든 게 헛소리/ 갈바람만 불어오면 날 버리고 갈 거면서(남남剌剌皆瞞語 재得秋風棄我歸).’ 그렇지 않아도 외로운 가을인데, 그간 정 주고 살던 처마 밑 제비들마저 자기를 내버리고 무정하게 떠나갈 것을 생각하며 읊조린 시이다. 이런 문객들에게 가을은 슬픔의 계절이요, 그들은 가히 가을 선비였다. 그래서 일찍이 회남자(淮南子) 무칭훈(繆稱訓)에는 봄처녀(春女)와 대조적으로 ‘춘녀사, 추사비(春女思, 秋士悲)’라고 했다. 아가씨들은 봄꽃 지는 것 보고 홍안이 사라질 것에 대한 걱정이 앞서고, 선비들은 낙엽을 보면서 덧없는 세상에 또 한 해가 기울고 자신들은 초라하게 늙어 가는 것에 대해 비애를 품는다는 것이다.

바야흐로 세상은 온통 가을빛, 가을 소리, 가을 내음으로 충만하다. 그래도 고뇌하는 선비에게 이 계절은 윤동주의 시구처럼 작은 잎새에 부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계절이다. 누가 봄날은 따스했고 가을은 풍요롭다고 했는가? 유산이 읊조린 바대로 ‘봄바람이 더 따스하다고 말하지 말라/ 한 많은 사람의 마음은 가을과 같은데(莫道春風更태蕩 恨人心緖只如秋).’ 천하의 문장가들도 이렇게 가을을 타는데, 우리라고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덜커덩 가을이 왔는데, 이 가을을 어쩌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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