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가정폭력 시달리다 남편 살해한 아내, ‘국민’이 선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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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 년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아들과 함께 남편을 살해한 60대 아내가 국민참여재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울산지법 형사11부(박주영 부장판사)는 지난 7일 존속살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65·여) 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A 씨 아들(41)에게 징역 7년을 각각 선고했다고 8일 밝혔다. 이들 모자는 올 5월 12일 밤 울산 집에서 남편이자 아버지인 B(69) 씨와 다투다가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불행한 가정사·가족에 헌신 고려”
국민참여재판서 집행유예 선고
함께 범행한 아들은 징역 7년

판결문에 따르면 A 씨는 어려운 집안에서 자라며 10대 때부터 생계를 책임지다가 1975년 지인 소개로 남편을 만났다. 하지만 결혼은 악몽의 연속이었다. 남편은 자주 술에 취해 아내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팔이 부러지고 허벅지가 골절되거나 몸에 멍이 들기 일쑤였다.

참고 살던 A 씨는 2016년 5월 남편이 손주한테까지 손을 대자 결국 집을 뛰쳐나왔다. A 씨는 아들이 구해준 오피스텔에서 손주와 살았다고 한다. 2019년 3월 남편은 다리를 심하게 다쳤다며 사과와 함께 재결합을 원했다. A 씨는 올해 4월 아들의 설득 끝에 손주 손을 잡고 다시 남편 집으로 들어갔다. 아들이 오피스텔 보증금 수천만 원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또 욕설과 폭행을 일삼았다. 올 5월 12일 A 씨가 휴대전화를 스마트폰으로 바꾼 날 비극이 벌어졌다. 남편은 "간 크게 요금을 2만 5000원짜리로 했냐"며 술을 마시고 아내를 때렸다. 손주가 이 모습을 보고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죽이려고 해요"라며 아빠에게 알렸다. 경찰이 출동했지만, A 씨가 처벌을 원하지 않아 발길을 돌려야 했다.

남편은 그날 밤 아내에게 주먹질을 멈추지 않았다. 이 모습을 본 아들은 화를 참지 못해 둔기로 아버지를 내리쳤다. 어머니는 이 순간 자신이 아들의 범행을 안고 가야겠다는 생각에 쓰러진 남편 입에 염산을 가져다 부었다. 그러고 둔기를 움켜쥐고 남편을 향해 여러 차례 휘둘렀다. 남편은 결국 과다출혈로 숨졌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이번 재판에서 어머니 A 씨에 대해 배심원 9명 중 7명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나머지 2명은 징역 5년의 의견을 냈다. 아들에 대해서는 징역 7년이 4명으로 다수 의견을 차지했다. 재판부는 "범행 수법이 잔인하고 죄질이 좋지 못하다"고 전제하면서 "A 씨가 40여 년 동안 심각한 가정폭력을 당하면서도 순종했고, 자녀와 손주 양육에 헌신한 점, 이웃들이 한결같이 불행한 가정사를 듣고 선처를 탄원하는 점을 고려했다"고 판시했다. 권승혁 기자 gsh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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