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가 된 시 남기고 치열하게 80년대 살다 간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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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민주동문회는 지난 9일 부산대 새벽벌도서관 앞 민주언덕에서 ‘고 양영진 열사 시집 헌정식’을 열었다. 양 열사의 유족과 부산대 국문과 동문이 참여했다. 부산대 민주동문회 제공

1980년대는 암울과 비탄과 분노의 시대였다. 1979년 10월 16일 ‘부마민주항쟁’으로 유신 군부 독재가 끝나고 1980년 ‘서울의 봄’으로 불리는 민주화를 기대했지만, 군부 정치 세력은 ‘5·18 광주민주화항쟁’을 폭동으로 몰아가며 군부 독재 체제를 열었다. 1987년 ‘6·10 민주화 항쟁’으로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 직접 선거를 쟁취했지만, 그해 대선에선 군부 독재 세력이 대권을 차지하며 진정한 민주주의는 실현되지 않았다.

시인이 되고 싶었던 문학 청년
부산대 86학번 故 양영진 열사
작고 32년 만에 추모 시집 출간
‘어머니 손톱을 깎아드릴게요’
군부 독재 저항과 부정의 시어

1980년대 역사의 마지막 격랑 속에 시인이 되고 싶었지만, 짧은 생을 아낌없이 던졌던 고 양영진(1968~1988) 열사가 있다. 그는 1986년 부산대 국문과에 입학한 뒤 시를 좋아해 학과 시 창작 동아리 ‘귀성’에서 활동했다. 당대 현실의 모순을 자각한 그는 저항적 행동을 실천했다. 그러나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많은 탄압을 받았고, 군부 독재의 억압이 잇따랐다. 실제 원하지 않았던 강제 군 복무 소환 통지서와 입대 과정에서 투쟁의 존재 가치 부정이라는 고통에 맞닥뜨려야 했다. 양영진은 혁명 동지들에 대해 자신이 이럴 수밖에 없는 미안함과 투쟁의 가열함을 당부하고 1988년 10월 10일 부산대 한 건물에서 군부 독재 타도와 미 제국주의 축출을 주장하며 투신자살했다. 이때 “어머님, 손톱을 다 깎아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로 시작되는 유서를 남겼다. 그는 1988년 10월 16일 광주 망월동 묘지에 안장됐다.

고 양영진 열사가 남긴 시들을 엮은 시집 <어머니 손톱을 깎아드릴게요>(전망)가 나왔다. 고인이 남긴 시 100여 편이 실렸다. 시에는 그가 보여 주었던 행동의 올곧음과 강렬함이 투영돼 있고, 젊은 지식인의 고뇌와 시적 열정이 출렁인다. 양 열사의 첫 시집은 1989년 옛 친구출판사에서 <식민의 땅에 들불이 되어>로 출간됐다. 이후 31년 만에 나온 시집에는 첫 시집에 실린 습작에 가까운 다섯 작품을 제외하고 모두 실었다.

‘코스모스가 피어 있어 잠들지 못하는 밤/아니 잠들어서는 죄를 짓는 밤/그대 생각을 합니다/새벽은 아직 멀었는데/바람이 거세게 붑니다/정작 내가 지켜야 할 것은/이렇게 밤을 지새며 지켜야 하는 것은/못다한 내 사랑이거늘/내 고여운 그대여/생각하면 할수록/코스모스 향기 코끝을 후벼대고/따뜻한 그대 숨결 같은, 햇살 퍼지는/새벽은 아직 먼 데 있습니다’(‘내 고여운 연인에게’ 중).

양영진 열사가 죽기 전 남긴 마지막 작품이다. ‘밤’과 ‘바람’이 시대적 어둠을 상징한다면, ‘코스모스 향기’ ‘새벽’ ‘고여운 그대에 대한 사랑’은 민주화의 염원을 뜻한다. 시집 해설을 쓴 김경복 문학 평론가는 “20대 초반의 대학생이 쓴 시라고 볼 수 없을 만큼 사고의 깊이와 예술적 완성도가 우러나온다. 유명한 민중 시인의 저항시 못지않게 탁월한 문학성을 지녔다”고 했다.

양 열사가 대학에 입학한 때의 현실은 학원 자율화와 맞물려 군부 독재에 대한 격렬한 투쟁과 저항의 시기였다. 학원가는 최루탄과 화염병으로 휩싸이는 서슬 푸른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대들이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것은/조국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이미 조국을 빼앗겼기 때문입니다.’(‘추석날’ 중) ‘나는 원래부터 돌부처가 아니다/미싱 바늘에 손가락 찔려도/눈물 삼키며 앉아 일하는 죽은 목숨 아니다/사장님 발바닥이나 닦는 똥걸레가 아니다’(‘걸레가 아니다’ 중)처럼 격렬한 저항과 부정의 시들이 시집의 태반을 이루는 이유다.

‘어머니 손톱을 깎아드릴게요/자꾸만 쌓이는 쥐똥 같은 가난/깎아드릴게요/(중략)/어머니 가난을 위해/절 어머니 손톱 속에 가둬 두지 마세요/자라나는 우리의 슬픔이 될 뿐이에요’(‘어머니의 손톱’ 중). 양 열사는 가난한 어머니의 한을 벗기기 위해 손톱을 깎아드린다고 말한다. 어머니 한의 탈피는 이 땅의 민중의 한을 푸는 길로 인식했다.

신병륜 부산대 민주동문회장은 “시인이 되고 싶었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한 고인을 위해 그가 남긴 시들을 책으로 다시 묶었다”며 “30여 년의 세월을 다독이는 조용한 추모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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