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잎들 / 이우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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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사, 오월 잎들이

철모르는 소녀라면

육, 칠, 팔월 잎들이 무성한 여인이라면

구, 시월 너머의 잎은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이슬 맞고 비 맞고 서리 맞고 단풍도 든

세상일 다 겪어 봐서 무서울 것도 없는

우리 집 아내 같은 잎을 수문장이라 불러야 할까



잎들은 그러나 마지막까지 여자라서

분홍빛, 주홍빛을 온몸에 둘렀는데

문 열고 창밖을 보니

벌써 결별의

인사를 하네



- 2020년 가을호 중에서-



이름 붙일 수 없는 여인, 시월의 잎들이 우리 앞에 있다. 유심히 살피자면 울 준비가 되어있는 듯 눈시울이 살짝 수상한 여인. 가슴이 철렁한다. 눈물은 얼마나 공격적인가. 동시에 얼마나 우리를 무장해제시키는가. 서로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는 시선이 사랑이라면 사랑은 슬픔의 힘으로 진화하는 것 같다. 에두를 수 없는 그 길에 아내가 있다. 시인은 단풍드는 잎에서 잊고 있었던 아내의 여성성을 보지만 창밖엔 벌써 결별의 인사가 시작되는 세월 아닌가. 문득 점 빼고 쌍꺼풀 수술하신 지 일 년이 못 되어 돌아가신 시어머니 생각이 난다. 팔십이 넘어서도 여자이셨다. 김종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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