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플라스틱 시대’ 우리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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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분리 배출’ 결국 시민의식에 달렸다



부산 강서구 부산시자원재활용센터에 모인 폐플라스틱들이 마지막 관문인 컨베이어 벨트를 통과하고 있다. 서 있는 사람이 집어내지 않으면 버려지는 쓰레기가 되어서 소각되거나 매립된다. 플라스틱 사용 자체를 줄일 수 없다면 재활용 비율이라도 높여야 함을 여실히 보여 주는 장면이다. 오른쪽 작은 사진은 재활용센터 앞마당에 반입된 플라스틱 쓰레기 모습.  정종회 기자 jjh@


우스갯소리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석기-청동기-철기 시대를 지나 ‘플라스틱 시대’라고 한다. 그만큼 플라스틱 소비량이 많은 우리네 현실을 빗대서 하는 말이다. 오히려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식상할 정도다. 플라스틱 사용을 거부하거나 최소화하고, 2차 환경오염 피해를 막아야 한다는 답에 이르기까지, 해결 방법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중독된 플라스틱의 편의성을 거부하지 못하고, 대충 처리하면 되겠지 하는 안이한 습성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이다. 어떻게 하면 소비자 못지않게 생산자에게도 책임을 강화하고, 정책적인 묘안을 찾아가느냐일 것이다. 부산의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 실태를 다시 한번 들여다보고, 재활용이라는 측면에서 실천 가능한 대안을 찾아보고자 한다.


비대면 시대 ‘플라스틱 대란’ 역습
부산서만 작년보다 10% 급증
라벨 떼고, 병 찌그러트리고
제대로 된 분리배출 1% 채 안 돼
생산자 책임 강화 정책도 필요



■폐플라스틱 재활용해야 하는 이유

플라스틱은 기본적으로 탄소와 수소를 주요 성분으로 하는 유기물질로 구성된 고분자 화합물이다. 분자구조를 조금만 조작해도 새로운 종류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그 종류는 수천 가지에 달한다. 반면, 플라스틱은 분해가 어렵다. 소각할 경우엔 이차적으로 대기오염이나 유해가스를 배출한다. 분해되는 데 수십 년에서 수백 년이 걸릴 것 같은 매립도 해결책이 아니다. 특히 최근에는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플라스틱 폐기물의 상당량을 처리해 오던 중국이 이를 금지함으로써 국내에서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해야만 하는 문제에 직면했다.

우리가 제대로 알아야 할 게 있다. 분리 배출된 플라스틱이 모두 재활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플라스틱이라고 해도 다 같은 플라스틱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물질이 묻어도 재활용이 어렵고, 플라스틱 재질 확인이 안 되면 버려진다. 하나의 플라스틱 컵이 몸통과 뚜껑으로 재질이 다르다는 건 여러모로 재활용에 장애가 된다. 재활용되지 않는 플라스틱은 말 그대로 쓰레기이다. 폐플라스틱의 순환 활용을 고민해야 한다는 결론이다.



■센터 반입 물량 절반도 재활용 안 돼

부산에서 발생하는 폐플라스틱 양은 얼마나 될까. 현실은 정확한 집계조차 안 되고 있다. ‘문전수거’로 강서구 생곡동 부산시자원재활용센터(이하 생곡 재활용센터)에 반입되는 플라스틱 물량으로 짐작할 뿐이다. 실제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올 8월 말 기준 부산시 집계는 플라스틱 재활용품 발생량은 3만 215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0.5% 증가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비대면 소비 증가 등으로 재활용품 사용이 급증한 탓이다.

부산의 경우, 아파트(공동주택)는 민간 쓰레기 분리수거 업체들이 플라스틱 등 재활용품을 수거해 간다. 아파트에서 나오는 쓰레기의 경우 상대적으로 분류가 잘돼 있어서 돈을 주고 이를 구매해 간다. 반면 공동주택이 아닌 경우는 각 기초지자체에서 문전수거를 한 뒤 구청 선별장으로 이동해 1차 선별을 거쳐 생곡 재활용센터로 옮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분리 배출된 플라스틱의 재활용률이다. 생곡 재활용센터 8월 말 기준으로 42%에 불과했다. 플라스틱이라고 다 같은 플라스틱이 아니라는 게 이제야 이해된다. 실질 재활용률은 더 낮을 것이다.

■구청 선별장·시 재활용센터 가 보니

개금동 부산진구재활용 선별장을 찾았다. 700여 평 전체가 쓰레기 산이다. 거기서 10여 명의 작업자가 파봉(봉지를 뜯음)과 선별 작업을 한다. 쓰레기더미를 피해 2층으로 올라가니 1층에서 올라온 플라스틱류가 컨베이어 벨트를 통과하고 있다.

부산진구 청소행정과 김선기 재활용시설계장은 “일주일 평균 135~140t의 재활용품이 들어오는데 올 추석엔 지난 수요일 하루에만 75t이 들어오고, 8일에도 73t이 들어왔으니 얼마나 늘었을지 알 만하다”고 말했다. 김 계장은 또 “페트병만 들어오면 바로 압축과정을 거칠 수 있는데 각종 플라스틱이 섞이다 보니 선별 작업에 많은 인원과 시간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 선별장에 고용된 직원만 87명(기간제·자활근로자 등 포함)이다. 분리배출 요령에 따라서 내용물을 비우고, 뚜껑·라벨을 제거한 뒤 찌그러트리기까지 한 상태로만 들어와도 엄청나게 효과적일 텐데 말이다. 정확하게 분리 배출한 물량이 1%도 채 안 될 것이라는 말은 충격이었다.

생곡 재활용센터에 갔더니 더 큰 쓰레기 산이 버티고 있다. 그곳은 부산의 4개 구·군(울산 D기업 민간 위탁)을 제외한 12개 구 재활용센터 재활용품을 받다 보니 규모가 클 수밖에 없다. 구청 선별장보다 좀 더 체계적이다. 무인계량시스템을 거쳐 트럭으로 반입된 플라스틱이 ‘트롬웰’에서 크기별로 분류되고, ‘광학선별’로 이동해 폴리프로필렌(PP), 폴리에틸렌(PE)이 구분됐으며, 수선 단계에선 컨베이어 벨트 옆에서 사람이 지키고 서 있다가 자기가 담당한 플라스틱 품목만 일일이 매의 눈으로 가려낸다. 다음은 분쇄와 세척 단계, 그리고 용융압출을 거쳐 재생원료로 만들어진다. 관리팀 박종준 과장은 “최근 5년 치의 센터 반입 플라스틱 처리 현황을 보면 미미하지만 재활용 비율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면서도 “잔재물(버려지는 플라스틱)이 높은 건 안타깝다”고 전했다.



■재활용되지 못한 플라스틱 운명

재활용되지 못하는 플라스틱은 어떻게 처리되는 것일까. 일단, 폐비닐, 폐플라스틱 등 가연성 물질을 선별해 파쇄, 건조 등의 과정을 거친 뒤 막대(팰릿) 형태의 고형연료(SRF·Solid Refuse Fuel)로 만들고, 잔재물만 처리한다. 잔재물의 운명은 일반 쓰레기처럼 소각되거나 매립된다. 부산에서 하루 생산하는 고형연료 규모는 90t. 중국의 폐플라스틱 수입금지 조치에 이어 원유가격 하락까지 겹치자 수출길이 막혀서 재고가 늘고 있다. 굳이 재활용 재질을 쓸 필요가 없어서다.

고형연료에 대한 사회적 논란도 있다. 폐기물을 재활용하는 고형연료 특성상 소각할 때 어떤 오염물질이 얼마나 나오는지 알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전남 나주의 열병합발전소는 2700억 원을 들여서 3년 전 완공했지만, 대기오염과 미세먼지 등을 우려하는 주민 반대로 지금까지 가동되지 못하고 있다.



■재활용 비율 높이는 게 관건

부산시에 대책은 있을까. 자원순환과 김영미 주무관은 “적재량 악화를 대비해 임시적치장 두 곳을 확보하고, 코로나19 이후 쌓이고 있는 재고(플라스틱 250~300t, 폐비닐 700t)를 줄이기 위해 민간 업체와 업무협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또한 14개 구에서 ‘세척한 일회용 플라스틱 컵 20개’를 갖고 주민센터 등 지정 장소로 가면 종량제봉투 10L 1개로 교환해 주는 캠페인을 시행 중이라고 알려준다. 관공서, 공기업만이라도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기 위한 조례 제정도 검토 중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깨어 있는 시민의식이 아닐까 생각된다. 적어도 내가 사용한 플라스틱은 나의 책임이라는 인식 말이다. 분리 배출한 쓰레기가 곧 나의 의식 수준임을 알면 좋겠다. 생산자에게도 책임을 두는 쪽으로 정책이 강화돼야 한다. 생산자책임재활용(EPR)제도가 있지만 실효성을 알 수 없다. 독일의 페트병은 뚜껑과 몸통이 단일 재질인 데 비해 우리는 용기·뚜껑·라벨이 제각각이라는 사실은 상징적이다. 생산과 유통 단계에서부터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거듭 강조하지만, 분리 배출이 귀찮다면 플라스틱 사용을 과감히 자제하길 바란다. 플라스틱 환경오염의 피해를 줄이는 일, 지금 당장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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