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나훈아와 트로트 그리고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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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용 (사)한국이벤트협회 중앙회 명예회장

“저는 부산 동구 초량2동 415번지 7통 3반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직업은 가수 하나였습니다.”

가황 나훈아가 며칠 전 대한민국을 뒤흔든 콘서트를 시작하며 한 말이다. 고향 부산에 대한 애정과 자신의 직업에 대한 강한 자부심이 배어 있는 이 말에 부산시민들은 더 열광했다.

지난 추석 전날 코로나19로 지친 국민들에게 힘과 위로를 드리겠다는 취지 하나로 만들어진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는 하나의 단순한 콘서트가 아니라 나라를 들썩이게 한 문화적 사건이었다.

유튜브에는 나훈아 관련 영상만 수백 건이 올라왔다. 공연 다음날부터 온 나라에 ‘테스형’ 열풍이 불더니 급기야 아이돌차트의 최상위권에 진입하는 기염을 토했다.

공연 이후 그가 남긴 노래 한 구절, 말 한마디 한마디에 대중들은 열광하고 환호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특히 부산시민들은 ‘부산 사나이’의 말 한마디, 노래 한구절에 뜨겁게 반응했다.

가황 나훈아의 노래는 다섯 가지의 키워드로 연결된다. 어머니와 고향, 사랑, 세월 그리고 인생이다. 인간의 희노애락을 관통하는 이 주제들은 때로는 묵직한 메시지로, 때로는 애잔한 그리움으로 우리를 위로한다. 가황 나훈아는 지난 40년 동안 인생살이 고달팠던, 지금은 코로나19로 지친 국민들을 위로한 위대한 정서적 멘토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부산에는 나훈아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부산은 한국의 대중가요를 견인한 불세출의 전설 같은 가수들이 태어났고 활동한 곳이다. 당장 떠오르는 부산 출신의 가수만 열거해보자. 나훈아 외에도 현철, 설운도, 최백호, 김수희, 정훈희, 김건모, 강산에, 김범수, 이승환, 이소라, 강다니엘,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며 세계적인 스타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은 BTS 정국도 부산 출신이다. 여기에 작고하신 현인 선생님과 부산 출신은 아니지만 부산사람이라 해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 <돌아와요 부산항에>을 부른 조용필도 있다.

어디 가수 뿐이랴. 부산을 담은 노래들도 즐비하다. 대중가요의 출발점인 사의찬미(1926년), 귀국선(1945년), 전우야 잘 자라(1950년), 굳세어라 금순아(1951년), 추억의 영도다리(1958년), 경상도 아가씨(1954년), 슈사인보이(1954년), 저무는 국제시장(1957년), 봄날은 간다(1954년), 보리밭(1954년), 이별의 부산정거장(1954년), 홍콩아가씨(1954년), 해운대 엘레지(1958년), 잘 있거라 부산항(1961년), 사랑은 눈물의 씨앗(1969년), 행복의 나라로(1974년), 돌아와요 부산항에(1976년),부산 갈매기(1982년) 등 주옥같은 명곡이 부산을 소재로 만들어졌다.

이 정도면 부산은 우리나라 대중문화의 뿌리이며 성지라 할 수 있다. 부산이 가진 이 엄청난 자산이 가장 부산다운 콘텐츠다. 이 콘텐츠는 문화성과 역사성 그리고 대중성과 상업성을 고루 갖춘 경쟁력이 있는 콘텐츠다.

‘물 들어 올때 노 젓는다’는 우리네 속담도 있다. 이때 부산에 대중문화의 역사, 부산의 역사, 부산만의 색깔과 정서가 공존하는 ‘트로트 뮤지엄’을 만들기를 문화계와 부산시에 제안한다. 부산 출신 가수들의 문화적 유산을 히스토리와 자료로 기억하고 보존하며, 새로운 트로트 및 대중가요스타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인큐베이터 공간과 대중가요와 연계한 부산만의 특화된 콘텐츠를 개발한다면 부산은 영화의 도시에 이어 노래의 도시가 될 수 있다. 대중문화 기획자로 30년간 일한 경험에 비추어 보면 트로트 뮤지엄은 충분한 문화적 경쟁력이 있다고 확신한다. 부산 출신 가수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부산의 노래를 함께 부르는 모습을 상상하니 가슴이 설레고 행복해진다. 세대와 세대, 시대와 시대를 만나고 이어줄 수 있는 가장 부산다운 트로트 콘텐츠에 부산의 역동적인 선율을 입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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