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무실 ‘긴급보호’ 갈 곳 없는 반려동물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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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진구 A 할머니의 강아지. 라이프 제공 부산진구 A 할머니의 강아지. 라이프 제공

올해 초 부산시가 제정한 ‘동물보호 및 복지에 관한 조례’가 정작 필요한 상황에서 ‘유명무실’했다.

부산 부산진구에 홀로 사는 80대 기초생활보장수급자 A 할머니에게 최근 치매가 찾아왔다. 일주일에 5번 요양보호사가 방문하지만, 혼자서 음식을 챙기기 어려운 데다 난청도 심해 요양병원으로 옮겨야 한다. 하지만,할머니는 손자가 데려온 강아지가 눈에 밟힌다. 유일한 가족이었던 손자마저 지난달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는 애지중지 키운 강아지를 맡아줄 곳이 생기기 전까지는 요양병원에 갈 수 없다며 버티고 있다.


치매 할머니 반려견 보호 거절

센터 수용 능력 10마리에 그쳐

긴급보호 거부 올해 들어 4차례

“부산시가 해결 책임” 지적 제기


할머니를 지켜본 사회복지사 B 씨는 강아지를 맡길 곳을 찾기 위해 주민센터, 구청, 부산동물보호센터까지 문을 두드렸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돌고 돌아 동물보호단체 ‘라이프’에 도움을 청했다. 라이프는 긴급보호동물 제도를 이용하기 위해 부산시가 운영 중인 ‘반려동물복지문화센터’에 문의했으나,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지난해 1월 개정된 ‘부산시 동물보호 및 복지에 관한 조례’는 동물복지지원센터에서 ‘긴급보호동물’을 인수해 보호하거나 분양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긴급보호동물’은 소유자 등의 사망 등과 같은 사유로 적정한 보호를 받기 어려워 긴급한 보호 조치가 필요한 동물로 규정됐다. 할머니 강아지도 여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부산시는 현재 반려동물복지문화센터가 강아지를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이를 반려했다. 올 초부터 센터의 싱크대 부근에서 누수가 발생해 더 이상 동물을 받을 수 없는 환경이라는 것. 특히 나무로 된 바닥이 썩으면서 대대적인 보수공사가 필요한데, 예산이 없어 수리를 하지 못한다고 전했다. A 할머니의 강아지가 갈 곳이 없어지게 되자, 서은숙 부산진구청장까지 SNS에 글을 올려 강아지 새 보호자 찾기에 나섰다.

부산시가 긴급보호동물을 거부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라이프에 따르면, 올해만 벌써 긴급보호가 필요한 사건이 4차례 발생했는데 모두 입소하지 못했다. 라이프는 올 3월에는 동래구의 한 정신질환자로부터 방치당한 개 2마리, 5월에는 수영구에서 주인이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옥상에 홀로 남겨진 고양이를 긴급 구조했다. 또, 올 7월에는 주인이 구치소에 수감되면서 고양이가 홀로 남은 상황도 발생했다. 그때마다, 반려동물복지문화센터는 사정이 있다며 손사래를 쳤다.

이번에도 부산시는 “해결 방법을 고민해 보겠다”면서도 부담스러운 입장을 내비쳤다. 명확하지 않은 기준으로 긴급보호동물을 받아주다가 선례를 남길까 두렵다는 뜻이다. 부산시 농축산유통과 관계자는 “센터에서 수용할 수 있는 강아지가 10마리 정도다. 이번에 받아주면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맡아 달라고 할 수 있다”며 조심스레 말을 전했다.

이에 대해 라이프 심인섭 대표는 “고령화와 1인가구 증가, 반려동물 인구 증가는 피할 수 없는 사회적 현상이고 부산시도 이를 해결해 나가야 할 책임이 있다. 이미 있는 제도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온갖 핑계만 대는 부산시가 과연 반려동물과 행복한 도시를 만들어갈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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