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A 컬렉션, 미술관 보고(寶庫) 들여다보기] 85. 우리 자신을 마주하는 색의 언어화, 고낙범 ‘청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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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낙범(1960년~)의 작품 ‘청록’은 그의 오방색(청·백·적·흑·황) ‘초상화 미술관’ 시리즈 중 하나이다. 이 작품은 클로즈업된 젊은 여성의 얼굴을 초록 색조만으로 표현했다. 미묘하고 섬세하게 묘사된 인물화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작품 속에서 아름답고 젊은 여성의 이미지는 전체 화면을 덮고 있는 청록 색조로 인해 우리의 시선과 사고를 교란시킨다. 게다가 작품 제목이 존재감의 표상인 ‘이름’이 아닌 색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낙범에게 색은 인물이 가진 개인성, 익숙함을 낯설고 모호하고 혼란하게 만든다. 그는 관람객이 인물과 색의 틈에서 서성이며 사유하게 한다.

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로 6년간 일하다 1990년대 중반부터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고낙범은 탄탄한 미술이론으로 무장한 전업작가다.

그는 “색채를 언어화하는 것이 내 작업”이라고 말하며 색 자체가 갖는 표현 가능성을 끊임없이 탐구해 왔다. 색채와 형태라는 전통적인 회화성을 작품 전면에 드러내면서도 고낙범 작가가 의도하고 전달하려는 의미는 개념미술에 가깝다.



초상화가 인물의 주체와 정체성의 문제, 사회적 메타포와 삶의 방식을 은유하는 표상의 장이라고 했을 때, 고낙범의 작업은 이러한 색조를 통해 초상화가 가진 코드를 끊어 내고 관람자의 시선을 다시 관람자에게 되돌려 준다. 작품은 관람자의 시선을 관람자의 얼굴로, 세계관으로 향하게 한다.

우리의 눈은 세상을 향하고 있어 자신의 욕망을 바라보지 못한다. 타인의 욕망과 세상의 욕망을 바라보게 한다. 작가는 회화적 특성인 이미지와 색을 통해 관람자를 사유의 장으로 인도한다. 고낙범의 작품은 현재 부산시립미술관의 인물화를 중심으로 한 전시 ‘소장품 하이라이트Ⅱ: 우리는 모두가 위대한 혼자였다’에 전시되어 있다.

사색의 계절 가을이다. 미술관에서 고낙범의 ‘청록’을 만난다면 여러분은 당신 자신을 만나는 시간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김지호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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