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영도를 육지로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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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겸 팬스타그룹회장·대한민국해양연맹총재

근대 이후 과학기술과 건축, 무기 등 모든 분야에서 서양은 동양을 압도했다. 상대적인 열세는 식민 역사로 이어졌고, 동양은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서양 모방’에 몰두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동양이 서양에 뒤진 것은 고작 300여 년에 불과하다. 그 이전에는 세계 부(富)의 3분의 2가 동양에서 생산되었다고 한다. 동서양 부의 규모가 역전된 까닭은 뭘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로 경계 도시의 지정학적 우연을 들 수 있겠다. 우연한 발명과 발견이 역사의 변곡점을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다. 사실 산업과 교통혁명을 촉발시킨 증기기관도 처음부터 대량생산을 위한 방직기계나 증기기관차를 예정하고 제작된 것은 아니다.

부산은 매립의 역사로 성장한 도시
남항 일부 매립 검토 필요한 시기
북항 재개발과 연결 땐 통합 시너지
새로운 상상력으로 해양도시 혁명을

산업혁명을 촉발시킨 ‘역사의 우연’은 석탄 광산의 양수 펌프에서 비롯됐다. 19세기 영국에는 광산이 많았는데, 석탄을 캐기 위해 땅을 파 들어가면 물이 나왔다. 이를 빼내기 위해 뭔가가 필요했고, 우연히 증기를 이용한 양수 펌프 기술이 고안됐다. 증기 기술은 이후 진화 과정을 거쳐 방직기에 달리면서 대량생산을 촉발시켰고, 이를 동력으로 한 증기기관차 개발로도 이어졌다. 우리가 책에서 배운 대량생산, 산업혁명, 교통혁명 같은 개념이 특정 국가가 처음부터 기획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21세기 흑사병이라고 하는 코로나19도 그런 점에서 역사의 변곡점이 될 수 있다. 어쩌면 300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동서양 부의 재역전을 기대할 수도 있겠다. 역사를 세밀하게 되돌아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통찰력이 있다면 역사 속에서 반전의 실마리를 잡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벌써부터 많은 미래학자들은 세계화 전략에 대한 인식과 가치관이 모두 바뀔 것이라고 예고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시대적, 역사적 우연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당장 내일부터 사흘간 부산에서 시작될 ‘2020 제14회 세계해양포럼’도 코로나19 이후 세계 해상 무역과 조선, 수산산업 등이 어떻게 변모하고 진화할지를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글로벌 해운산업이 현재 어떤 상황에 직면해 있는지, 곧 닥쳐올 조선과 항만산업의 스마트화, 미래 수산 양식기술의 산업화 가능성은 물론이고 해양환경과 기술이 어떻게 결합하고 접목해서 상생의 비즈니스로 전환될 수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필자의 삶터인 부산을 같은 맥락에서 들여다보자. 해양과 대륙의 경계 지점인 부산은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거쳤을까. 일제강점기 동안 부산은 대륙 침략을 위한 일본의 교두보였다. 한반도는 식민의 실험 무대였고 부산은 그 실험을 위한 실증 도시가 됐다. 그 시절 부산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해안은 일본 산업자본에 의해 강제적으로 매립됐다. ‘테스형’을 부른 나훈아의 고향인 초량동도, 필자가 태어난 중앙동 일대도 다 그 시절 매립 역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일본은 식민 하의 행정권을 악용해 일본 산업 자본가들에게 매립권을 주었고, 매립지를 되팔아 거대 자본을 만드는 과정을 반복했다. 서양이 식민지를 통해 확보한 토지에 노예를 동원한 ‘플랜테이션(대규모 경작)’으로 근대 자본을 확보한 구조가 한반도, 특히 부산에서 그대로 재연된 셈이다.

매립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특히 자의적, 선택적 항만 매립은 부산항이 세계 5~6위의 컨테이너 물동량을 자랑하는 배경이 됐다. 지금의 북항 재개발도 매립을 근간으로 한다. 조금은 엉뚱한 제안이 될 수 있겠지만 경계에 놓인 영도의 재발견도 매립에서 찾을 수 있다. 영도대교와 부산대교, 부산항대교, 남항대교 등으로 영도가 육지와 이어졌지만 이제는 ‘선’이 아니라 ‘면’의 연결을 통해서 도시 확장과 통합을 주도하면 좋을 것 같다. 특히 해양대학을 필두로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등 대한민국을 대표할 해양클러스터가 영도에 구축됐으니 면과 면의 연결 필요성은 더 커졌다.

북항에 이어 남항 일부를 매립하는 방안은 그래서 신중히, 긍정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재개발’된 북항과 영도를 하나의 구역으로 일체화시켜 운영한다면 시너지 효과가 클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중구와 동구, 영도구의 광역 통합도 가능하다. 북항과 남항의 물길은 일종의 해저터널 건설을 통해서 얼마든지 순환시킬 방안을 찾을 수 있다.

부산은 해양도시다. 그러나 더 큰 바다로 나아가기 위해 앞바다를 매립해 거대한 항만을 지었듯이, 해양과학 클러스터 구축을 계기로 영도를 원도심과 이어서 도시 통합의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하면 좋겠다. 산업혁명이 우연한 기회를 통해서 촉발되고 ‘자의적’ 선택에 의해 진화해 왔던 것처럼 영도와 원도심에도 새로운 상상력을 불어넣어 해양도시 혁명의 기폭제가 마련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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