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균의 세상 터치] 부산은 노인과 바다의 도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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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노인과 바다’는 미국의 대문호 헤밍웨이가 1952년 발표해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받은 대표작이다. 혼자 살면서 어부생활을 하는 한 노인의 이야기를 다룬 중편소설이다. 소설에서 노인은 매일 열심히 바다로 나갔으나, 물고기를 잡지 못해 허탕을 치다 85일 만에 자신의 조각배보다 큰 청새치를 발견한다. 사흘에 걸친 사투 끝에 겨우 낚아 올려 배에 매단 청새치는 항구로 돌아오는 길에 상어떼에게 다 뜯겨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는 내용이다.

소설에는 노인이 힘센 청새치를 잡기 힘들어 지쳐 갈 때 “그 애가 있었으면”하고 한마을에 사는 어느 소년을 찾는 대목이 나온다. 소년이 평소 외롭게 지내는 노인을 자주 찾아 위로하며 유일한 친구로 지냈기 때문이다. 노인이 소년을 애타게 그리워하는 이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젊은 인구의 유출과 감소로 빠르게 초고령화 도시로 늙어 가는 부산의 안타까운 현실이 오버랩된다. 부산이 이대로 가다간 소설 제목처럼 노인과 바다뿐인 도시로 전락할 게 걱정돼서다.

지역 경제 침체, 마땅한 일자리 부족
젊은 층 취업 위해 부산 떠나기 일쑤

지속적 인구 감소로 340만 밑돌아
쇠락한 도시·초고령화 사회 우려돼

생산성·경쟁력 높이는 노력 절실해
부울경 메가시티로 활력 되찾아야


몇 년 전부터 “부산은 노인과 바다의 도시”라며 자괴적으로 말하는 시민이 늘고 있다. 오랜 불황과 지속적인 인구 감소 탓에 활력을 잃은 채 위기 국면으로 치닫는 암울한 지역 상황을 지적한 표현이다. 부산 청년들이 마땅한 일자리나 일감이 없어 수도권 등 타지로 떠나는 현상이 계속될 경우 부산은 활동성이 저하된 노인과 조용한 바다만 남은 쇠락한 도시로 추락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게다.

부산 경제를 지탱해 온 각종 제조업과 해양수산업은 기반이 약해 저성장 장기화와 내수 부진 영향으로 심각한 경영난에 시달리며 무너지고 있다. 고부가 가치를 창출하는 관광·마이스(MICE) 산업은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직격탄을 맞아 고사 상태에 놓였다. IT(정보통신) 같은 첨단산업 육성이나 산업구조 고도화, 미래 먹거리와 신성장 동력 확보는 부진한 실정이다. 부산시가 2004년부터 현재의 민선 7기까지 오랫동안 시정의 대표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는 ‘다이내믹 부산(Dynamic Busan)’이 무색할 만큼 지역 경제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열악한 경제 사정은 양질의 일자리 부족으로 이어졌다. 결국 젊은 층이 취업과 창업을 위해 부산을 등지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올 3분기 부산 15~29세 인구 실업률은 10.6%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7%포인트 급등해 참담한 청년 실업률을 여실히 보여 준다. 이는 전국 17개 시·도 중 두 번째로 높은 데다 역대 최악의 수준이어서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지난 20일 부산대에서 숨진 취업준비생처럼 취업절벽에 절망한 젊은이들의 극단적인 선택이 잊을 만하면 들려오는 게 너무나 슬프다.

부산은 머잖아 한국 제2 도시의 위상마저 인천에 빼앗길 판국이다. 올 9월 말 집계된 부산 인구는 339만 9749명. 1995년 388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매년 인구 유출과 저출산 풍조 속에 인구가 줄어든 결과다. 부산 인구가 내년 경남에, 2~3년 내 인천에 각각 추월당하며 2036년께 300만 명 밑으로 떨어질 거란 정부 예측에 씁쓸하기만 하다.

부산이 곧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하게 돼 다양한 노인정책과 함께 도시 생산성 및 경쟁력 하락을 막기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부산은 만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조차 8개 특별·광역시 가운데 가장 높은 18.7%로, 고령화 사회에 들어간 지 오래다. 전국 평균을 웃도는 급속한 고령 인구 증가세로 인해 2022년 고령자가 20% 이상인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들고, 고령자 비중이 2030년 29.3%, 2047년 41.0%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다. 반면 0~29세 인구 비중은 전국 8대 도시 중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노인과 바다의 도시’가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닌 셈이다.

생존이 위태로운 부산의 서글픈 현주소를 희망적으로 바꾸는 데 진력할 때다. 800만 명이 사는 부산·울산·경남을 동남권 광역경제권으로 통합해 과도한 수도권 일극체제에 대응할 만한 경쟁력을 키우며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이 현실적인 묘안이다. 따라서 최근 움직임이 활발한 ‘부울경 메가시티’ 구축과 광역교통망 건설에 차질 없는 추진과 성취가 요구된다. 가덕신공항 조성도 부울경을 위해 반드시 성사시켜야 마땅한 과제다.

이런 가운데 부산시를 비롯한 모든 기관단체와 전 시민이 산업생태계 개선과 좋은 일자리 창출, 정주 여건 확충, 출산율 제고, 노년층 사회 참여에 다 함께 노력한다면, 부산은 인구가 새롭게 유입되거나 증가해 생기와 젊음이 넘치는 성장의 도시로 재도약이 가능할 것이란 확신이 든다.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 주인공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더 먼 바다로 나가 필사적으로 도전했던 모습은 지금 시민들이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 더 늦기 전에 부산의 모든 역량을 쏟아내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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