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익의 참살이 인문학] 공작의 깃털과 전교 1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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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아름다움과 신비를 말할 때 우리는 흔히 수컷 공작의 크고 화려한 깃털을 언급하곤 한다. 공작은 왜 이렇게 크고 아름답지만 거추장스러운, 그래서 포식자의 눈에 잘 띄는 깃털을 가지게 되었을까? 이것은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형질이 살아 남아 진화한다는 자연선택의 논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다. 아름다운 깃털이 주는 진화상의 이익이 무엇이든 그것을 지니고 다니는데 필요한 에너지의 비용과 포식자에게 노출될 위험이 너무 클 것이기 때문이다. 뭔가 자연선택의 단순 논리를 조정하는 힘이 작용했을 것이다.

진화생물학자들은 암수의 짝짓기 과정에 작용하는 선택의 힘이 이런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한다. 암컷 공작은 크고 화려한 깃털을 가진 수컷을 선택해 짝짓기를 할 확률이 더 크기 때문에 수컷들은 번식의 기회를 확대할 큰 깃털을 진화시켰다는 것이다. 이것이 자연선택과 더불어 생명 진화를 추동해 온 ‘성 선택’의 힘이다.

학력·성적, 미래 예측 지표 될 수 없어
환자 고통 공감할 수 있어야 좋은 의사
너나없이 과거의 욕망에서 벗어나야

그러니까 공작의 큰 깃털은 생존과 번식이라는 두 가지 욕망이 균형을 이루는 방향으로 진화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의 상식으로는 과도하거나 신비로운 화려함이지만 그것도 결국은 생존과 번식의 힘이 균형을 이룬 결과일 뿐이다. 암컷들이 왜 그렇게 크고 화려하지만 비용이 많이 드는 깃털을 가진 수컷을 선호하게 되었는지를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실제로 멋진 깃털을 가진 수컷이 짝짓기를 더 많이 한다는 증거는 많다.

진화생물학자들은 수컷의 화려한 깃털이 건강을 상징하는 기호의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화려한 옷차림과 용모는 부(富)의 기호이고 부유한 아버지를 둔 자식이 건강하게 성장해 번성할 가능성이 큰 것과 같은 이치다. 깃털은 신체의 부속기관이고 의복은 문화 기호지만 그 기능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

의복뿐 아니라 우리의 몸도 생존 또는 번식과 연관된 상징 기호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욕망이란 그런 기호들을 향한 몸의 지향이다. 떡 벌어진 어깨와 우락부락한 근육과 큰 키는 우수한 유전자와 풍부한 물적 자원을 상징하는 기호로 해석된다.

생물학적 한계를 벗어나 고도의 지능으로 문명을 일군 인간은 이런 신체 기호 말고도 다양한 문화 기호를 선택의 기준으로 삼아 왔다. 전제 군주 시대에는 혈통과 신분이, 자본주의 시대에는 재산이 공작의 깃털과 같은 역할을 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시험을 통해 인재를 등용해 온 우리나라에서는 학력과 성적이 젊은이의 미래를 예측하는 기호로 여겨졌다.

한참 산업화가 진행되던 시기에는 이 기호가 비교적 잘 작동했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기술은 바로 직장에서 응용할 수 있었고 학력과 성적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는 구조가 가장 공정한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단순한 지식과 기술이 아닌 다양한 상황과 정보들이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새로움을 산출하는 초연결, 초지능의 세상을 살고 있다. 학력과 성적은 더 이상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지표가 아닌 세상이다.

그런데도 우리의 욕망은 아직도 공작의 깃털과도 같은 문화 기호에 고정되어 있는 것 같다. 의사협회가 의사 정원의 확대를 반대하기 위해 만든 홍보물에는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은 의사’가 좋은 의사의 표상으로 등장한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있는 어떤 치과는 원장이 어떤 일류 대학에 수석으로 입학하고 졸업했다는 문구를 자랑스럽게 진열하고 있다. 공작의 깃털을 한껏 펼쳐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 깃털이 훌륭한 유전자의 직접 표현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교 1등과 수석 입학이 훌륭한 의술을 의미하는 것도 당연히 아니다,

만약 암컷 공작들이 화려한 깃털의 속임수를 깨닫고 선호하는 기호를 바꾼다면 수컷의 화려한 깃털도 금세 사라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의료 서비스의 소비자인 환자가 학력과 성적만을 내세우는 의사가 아닌 다양한 인생 경험을 통해 환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배려하는 좋은 의사의 기호를 찾아내 선호하고 욕망한다면 우리도 그런 의사를 가지게 될 것이다.

수컷의 화려한 깃털을 만든 것이 암컷의 선호이듯이 전교 1등과 수석 입학 같은 경력을 과시하는 의사를 만든 것도 그런 일차원적 기호에 고정된 우리들의 욕망일 것이기 때문이다.

아불류시불류(我不流時不流). 내가 흐르지 않으면 시간도 흐르지 않는다. 과거에 고정된 욕망의 지배에서 벗어나 그 욕망의 고삐를 잡아 시간과 함께 흐르도록 하는 것, 그것이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의 시대적 과제이지 않을까.

/부산대 치의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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