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무공천 책임 정치' 약속 내팽개친 민주당, 부끄럽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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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결국 내년 4월에 있을 부산과 서울 시장 보궐선거 후보자를 공천하기로 결정했다. 관련 당헌 개정과 공천 찬반을 묻는 전 당원 투표 결과 86.64%라는 압도적인 찬성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등 중대한 잘못으로 직위를 상실해 재·보궐 선거를 하는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라는 현행 규정의 개정은 불가피해졌다. 이로써 문재인 대통령이 5년 전 민주당 대표로 있을 때 세운 기본 원칙이 훼손되고 말았다. 문 대표는 그때 새누리당 고성 군수 낙마에 따른 재선거 발생과 새누리당의 후보자 천거 문제를 비판하며 조항을 신설했다. 민주당의 이 방침이 올바른 정치 문화를 수립하는 조치로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는 점을 상기하면 씁쓸한 마음을 감추기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이 세운 원칙 훼손 불가피
정치 신뢰 저버린 결과는 소탐대실일 뿐

특히 보궐 선거의 촉발 요인을 생각하면 이런 심정은 더할 수밖에 없다. 어쨌거나 두 도시 여당 출신 수장의 낙마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한 성추행과 관련이 있거나 그런 의혹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민주당의 이번 결정을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시민 단체들은 당시 “거부나 문제 제기를 못하는 위력에 의한 성폭력의 특성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라며 두 수장의 행태를 비판했다. 박원순 전 서울 시장 성추행 의혹 피해자도 “사건 공론화 이후 지금까지 민주당이 어떤 조치를 취했느냐”라며 내년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 후보 공천 방침을 밝힌 이낙연 대표에게 공개 질의서를 보내 반발하지 않았는가.

실제 민주당의 내년 부산, 서울 보궐선거 후보자 공천 방침은 이미 예상됐다. 지난 당 대표 선거 때도 공공연히 그런 뜻을 내비친 후보자가 있었고, 여당 중진들도 직간접적으로 공천을 기정사실로 하는 발언을 해 왔다. 그러나 그 시기에는 소수에 불과했지만, 민주당 지도부 내부에서 당헌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당의 건전한 운영을 위해 필요한 소금 같은 그런 발언을 이번에는 듣기 어렵다. 이러니 당원 찬반 투표가 답을 정해 놓고 실시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이낙연 대표는 2일 투표 결과를 공개하며 피해 여성들에게 거듭 사과한 후 도덕적이고 유능한 후보를 찾아 유권자 앞에 세울 것이라고 약속했다. 민주당을 향한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한 반응으로 해석된다. 원칙을 버릴 만큼 중요한 내년 보궐선거의 비중을 이해해 달라는 대국민 호소로도 들린다. 물론 공당 대표를 짓누르는 고민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대선을 앞두고 열리는 가장 큰 선거를 건너뛰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래도 소탐대실이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정치 신뢰와 약속을 내팽개친 행위는 부메랑이 될 수밖에 없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라고 했던 조상의 충고가 어느 때보다 크게 울리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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