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문방구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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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아파트 담 옆에 초등학교가 있다. 집에 있으면 벨소리와 아이들 떠드는 소리들이 들린다. 아이들 괴성이야 아무리 시끄러워도 참새가 지저기는 듯 백색소음으로 들린다. 가끔 아이들 하교 무렵에 정문 앞을 지나칠 때면 아이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로 난장판이 따로 없다. 특히 정문 앞에 나란히 있는 문방구 앞에는 북적이는 아이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문방구에는 실내화와 체육복이나 공 등이 주렁주렁 매달려있고 진열대에는 불량식품이라고 일컫는, 그렇고 그런 과자들이 다닥다닥 진열되어 있다. 진열대에 덧댄 가판대에도 인형이나 액체괴물, 스티커, 액세서리, 물총, 팽이 등 아이들이 갖고 싶어 하는 것들이 지천으로 널렸다.

문방구는 없는 게 없는 마술가게
간절하게 갖고 싶은 것만 팔아

문방구주인 되는 꿈 못 이뤄
어른 되어서도 문방구 주변 기웃

이제는 눈길 사로잡는 게 없어
다른 세상에 유혹하는 게 많아



가방을 패대기쳐놓고 뽑기 통 앞에 쪼그려 앉은 아이, 그 옆에 붙어 뽑기를 구경하는 아이, 목에 두른 핸드폰 줄을 만지작거리면서 장난감권총을 쳐다보는 아이, 반짝이사인펜을 만졌다가 놓는 아이, 만화캐릭터가 그려진 파우치를 요리조리 돌려보는 하는 아이 등 문방구 앞을 얼쩡거리는 아이들 모습은 가지가지다. 그러나 그 표정은 똑 같다. 강아지가 밥그릇에 얼굴을 묻고 먹는 데만 몰입하듯, 아이들 표정과 눈빛도 지금 눈앞에 있는 것 말고는 그 어떤 것에도 관심 없어 보인다.

‘아저씨 이거 얼마예요?’ ‘아줌마 이거 얼마예요?’ 쫄쫄이과자와 카드딱지, 막대사탕을 든 아이들이 문방구주인을 향해 외친다. ‘이백 원’ ‘오백 원’ ‘천 원’ 하고 외치는 문방구 주인의 목소리도 덩달아 고성이다. 주인의 대답에 아이들은 꼬깃거린 천 원짜리 지폐나 땀에 전 동전을 주인에게 건넨다. 보나마나 그 돈은 아이의 그날 용돈이겠지. 그런 용돈도 없는 아이들은 곁에서 구경만 한다. 그 중에 한 아이가 슬러시 통 앞을 왔다 갔다 한다. 그 아이 역시 슬러시 한 컵만 가진다면 아무 것도 바랄 게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아이는 돈이 생기면 기필코 슬러시부터 사 먹을 것이라 다짐했을 것이다.

내 어릴 때나 지금이나 아이들에게 문방구는 없는 게 없는 마술가게나 마찬가지다. 문방구에는 간절하게 갖고 싶은 것만 파는 것 같았다. 돈이 없었기 때문에 갖고 싶은 것들이 있어도 구경만 해야 했다. 내가 가진 밋밋한 플라스틱필통보다 자석필통이 갖고 싶었고, 12색 크레파스보다 24색이나 36색 크레파스를 갖고 싶었다. 고무냄새만 나는 지우개보다 향기 나는 지우개를 갖고 싶었고, 연필보다는 샤프를 갖고 싶었다. 어쩌다 얼음과자 하나를 사면 세상을 다 품은 듯 좋았다. 노란색소가 밴 얼음과자를 입에 물고 하교하는 길은 얼마나 행복했던가. 어른이 되면 꼭 문방구주인이 돼서 먹고 싶은 것 실컷 먹고, 갖고 싶은 것 실컷 갖겠노라 다짐했다.

나는 문방구주인은 못 됐지만 여전히 문방구 주변을 기웃댄다. 그러나 문방구에는 내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없다. 이제 36색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린다고 12색 크레파스보다 더 잘 그린다는 보장이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를 유혹하는 것들은 문방구가 아닌 다른 세상에 훨씬 많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이제 우리는 향기 나는 지우개나 꽈배기에 만족하기에는 어쩐지 억울하다. 색소얼음과자를 먹지만 여러 가지 과일 맛 나는 고급아이스크림이 있다는 걸 알기 전에 먹는 그 맛은 다르다. 우리 깜냥으로는 넘볼 수 없는 세계가 나날이 으리으리하게 펼쳐진다. 오르지 못할 나무를 쳐다본 게 잘못인지, 오르지 못할 나무가 우리 앞에 버티고 있는 게 잘못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이병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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