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원 칼럼] 가덕신공항은 '자치분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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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분열에서 보았듯 좌와 우, 진보와 보수의 진영 갈등만 있는 줄 알았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민주주의를 성취한 이 대명천지에 지역 갈등 같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미개한 시절의 우울한 유산은 진작에 청산되었으리라 믿었다. 순진한 생각이었다. 지역주의는 사람들의 느슨한 경계망을 뚫고 독버섯처럼 자라나 있었다. 그 위세는 여전했고, 수도권·비수도권의 지역 갈등이라는 새로운 버전으로 우리 앞에 턱 하니 나타났다.

김해신공항 둘러싸고 국론 분열
부산에는 신공항 들어서면 안 되나

서울·수도권 공항 중심주의는 독선
미래 위해 공항 문제 바로잡아야

가덕신공항은 부산의 자존심
전국이 아는 자치분권 상징으로


“김해신공항 문제 없지만 안된다…황당한 결론”, “‘정치공항’된 신공항 4년만에 또 뒤집혔다”, “‘동남권 신공항’ 14년 돌고 돌아 원점”, “또 뒤집었다…‘선거용 제물’ 된 신공항”, “14년간 재검토만…‘신공항’ 제물로 또 표심 몰이”…. 국무총리실 김해신공항(김해공항 확장안) 검증위원회가 17일 김해신공항 추진 계획을 사실상 백지화하자 다음 날 아침 부산에 도착한 수도권 신문들이 일제히 1면에, 그것도 머리기사로 뽑은 헤드라인이다. 부산에 배달된 신문의 보도 행태가 이 지경이고 보면 도대체 이들 언론사가 부산 독자들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의아스럽기까지 하다.

‘중앙지’라는 화려한 외피를 둘렀을 뿐 기실은 뼛속까지 ‘수도권 중심주의’를 관철해 온 수도권 지역 언론의 정체가 백일하에 드러난 셈이다. 대한민국의 한정된 자원이 수도권을 넘어 지역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은 국부 유출이자 결국 자신들의 파이가 적어질 뿐이라는 그들의 속셈이 분명해졌다. 영남의 한 축인 대구·경북 언론도 신공항에 관한 한 완강한 지역주의를 견지한다. 부울경은 지역 갈등에 포위되어 고립무원이다. 이런 사면초가 신세에도 불구하고 지역민들이 언제까지 ‘절 모르고 시주하기’라는 관용을 ‘중앙 언론’에다 베풀지 두고 볼 일이다.

부산 사람들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중앙 언론에 대한 분노로 절절 끓고 있다. 수도권 중심주의와 자사 이기주의 앞에는 진보와 보수가 따로 있을 수 없다는 듯 중앙 언론은 지역 때리기에 관한 한 ‘초록은 동색’이라는 사실의 발견 때문이다. 한국 언론의 위상이 입에도 담지 못할 ‘기레기’ 정도로 추락한 마당에 지역과 지역민은 그들의 진정한 독자가 아니라는 게 새삼 확인되었다.

그렇다면 가덕신공항은 부울경 사람들에게는 어떤 의미인가. ‘가덕신공항=□□□□’라는 빈칸 메우기 질문을 던진다면 다채로운 답이 쏟아질 것이다. 첫 번째 대답은 아마도 ‘지역사랑’일 것이다. 지역사랑은 ‘지역발전’과 동의어다. 부울경이 수도권에 맞설 유력한 축이지만 갈수록 인구는 줄고 경제는 엉망이다. 지역사랑은 ‘나라사랑’, 지역발전은 ‘나라발전’으로 이어진다는 믿음도 한몫한다. 발 딛고 살아가는 지역이라는 토대 없이 그보다 추상적인 나라나 국가를 상상하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가덕신공항은 나아가 ‘메가시티’ 혹은 ‘광역연합’이다. 지역사랑과 지역발전의 확장이다. 부산 울산 경남은 원래 한 뿌리였고 함께 상생 발전해야 할 사이다. 영호남 남부 광역연합은 충청권까지 세를 넓힌 수도권에 맞설 유일한 대안이다. 메가시티와 광역연합의 구성을 촉진하고 유대를 강화하는 축이자 장치가 가덕신공항이다. 부울경은 메가시티와 광역연합의 두 날개로 세계를 향해 비상할 수 있다.

가덕신공항은 종래에는 ‘균형발전’이자 ‘자치분권’이다. 부울경이 저만 잘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지방소멸과 수도권 일극주의를 막아 나라 전체가 고루 잘사는 국가균형발전의 기폭제가 될 것이다. 가덕신공항에서야말로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으로 가는 확실한 티켓을 끊을 수 있다. 자치분권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던 노무현 정부가 2006년 시작한 제2 관문공항 사업을 노 정부를 이어받았다는 문재인 정부에서 매듭을 짓는 게 역사적인 순리이기도 하다.

14년 돌고 돌았으니 그동안 허비한 세월이 아까워서라도 수도권 중심주의 혹은 신공항 문제를 현 정권 공격의 불쏘시개로 삼으려는 불순한 시도에 단호히 맞서 가덕신공항 개항에 속도를 내야 한다. 2030 부산월드엑스포 유치를 위해서라도 특별법이라는 패스트 트랙에 태워 2028년 개항이라는 시간표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역의 여망을 정부 여당과 정치권은 새겨들어야 한다.

자치분권의 대명사로 떠오른 가덕신공항이 내년 4월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한갓 정쟁 거리로 소비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그러기에는 제2 관문공항에 들어간 부울경의 14년 정성이 녹록지 않다. 동남권 신공항이 선거 때마다 단골 이슈로 떠올라 정치적 노림수로 전락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여와 야를 떠나 신공항이 정치권의 조롱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부울경의 미래를 위해 이제 지루한 신공항 공방에 마침표를 찍을 때다. 

/논설실장.fore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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