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광명의 정견만리(正見萬理)] 부산시장 보궐선거, 어떻게 볼 것인가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논설위원

판이 묘하게 흘러간다. 내년 4월 7일 치러지는 부산시장 보궐선거 말이다. 8일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되면서 선거판의 막이 올랐는데, 정작 그 판에서 ‘부산시장 선거’는 실종되고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이 나라를 흔드는 대형 사건으로 비화하면서 모든 지역 이슈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무력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 총장이 ‘정의의 화신’인지 추 장관이 ‘검찰개혁의 선봉장’인지는 두고 볼 일이나, 둘 사이의 갈등이 부산 시민에게도 최대 관심사가 돼 버렸다. 10일 윤 총장에 대한 징계위원회가 예정돼 있으나 이후 이어질 관련 소송으로 사태는 훨씬 길어질 전망이다. 홍준표 의원이 최근 “민주당과 검찰당의 대립 구도에서 야당은 증발해 버렸다”라고 한탄했다. 그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추와 윤의 갈등 구도에서 부산시장 보궐선거가 증발해 버렸다.


지역 이슈들 ‘추-윤’ 갈등에 무력화

국내 정치판 뿌리째 흔들고 있어

잔여 임기 메꿀 시장 뽑는 선거 아냐

절체절명의 부산 살릴 기회 삼아야

가덕신공항 등 지역 염원 좌초 위기

부산에 도움되는 선택 고민해야


이른바 ‘추-윤 대전’은 실제로 우리 정치판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이 취임 후 최저치인 30%대까지 떨어지고, 부정 평가는 60%에 육박하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더불어민주당은 30% 선이 무너지면서 처음으로 ‘지지율 1당’ 자리를 국민의힘에 내주기도 했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추 장관이 윤 총장에 대한 직무정지 지시를 내린 즈음인 지난달 27일부터 급격하게 하락했다. 추 장관과 윤 총장의 갈등이 지지율 하락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된다. 내년 보궐선거에서 여당 후보가 이겨야 한다는 의견은 36%에 그친 데 반해 야당 후보가 이겨야 한다는 답변은 50%를 기록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민주당은 아직은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모습이다. 김영춘 국회 사무총장, 김해영 전 의원, 박인영 부산시의원 등이 출마 후보군으로 거론될 뿐 열기가 달아오르지 않고 있다. 반면에 국민의힘 등은 ‘떼놓은 당상’이라는 듯 너도나도 출마 채비로 바쁜 모습이다.

윤석열이 옳다, 추미애가 맞다를 여기서는 따지지 않으련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누가 잘했고 잘못했는지 판가름 날 테니까. 중요한 건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어떻게 봐야 하느냐다. 잔여 임기 1년여짜리 단기 시장이지만, 부산은 지금 절체절명의 나락으로 떨어지느냐 아니면 새로운 시대로의 비전을 세워 나가느냐 하는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대한민국 제2 도시’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만치 부산은 하루가 다르게 위축돼 간다. 젊은이는 떠나려 하고 늙은이만 늘어 가니 도시의 활력은 갈수록 사라지고 무기력에 빠진다. 부산 사람들이 지방분권이니 균형발전이니 하며 목이 터져라 외쳐 봐도 메아리 없는 일방의 하소연일 뿐이다.

그래서, 부산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천신만고 끝에 스스로 찾아낸 답이 ‘부울경 메가시티’ 구축이고 ‘2030 월드엑스포’ 유치고 가덕신공항 건설이다. 어느 하나라도 실패하면 전체가 망가지는 이 사업들은, 그야말로 부산의 목숨을 구해 줄 동아줄이다. 반드시 이뤄 내야 하는데, 목하 사정이 순탄치 않다. ‘서울 우선주의’를 고질처럼 떨쳐 내지 못하는 소위 ‘중앙’의 관료를 비롯해 정치·언론 세력은 부산의 이 염원을 ‘세상 물정 모르는 촌놈들의 어거지’ 쯤으로 여기는 듯하다. 가덕신공항 문제에서 특히 더 그렇다. 국무총리실 검증위원회가 사실상 김해신공항 안을 백지화하는 결론을 내려 순풍을 타는가 여겨졌던 가덕신공항 계획은 ‘서울 우선주의자’들의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훼방으로 자칫 좌초할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이번 부산시장 보궐선거 날은 단순히 잔여 임기를 채울 시장을 뽑는 날이 아니다. 부산 시민들이 자신의 명운을 좌우할 중차대한 선택을 해야 하는 날이다. 어느 후보가 초라해진 부산의 위상을 다시 높여 주고, 어느 당이 부산 사람들의 자존심을 세워 줄 든든한 뒷배가 될 수 있는지 따지고 또 따져 봐야 한다. 이번 선거는 차기 대통령을 뽑는 선거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부산 시민에게 봉사할 공복을 뽑는 선거다. 정치꾼들이 이번 보궐선거가 대선의 전초전이라고 아무리 부각한다 해도 적어도 부산 사람들만은 그렇게 되도록 방치해선 안 된다. 남이 하는 말에 휘둘려 정작 자신에게 득이 될 기회를 놓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같은 사정으로, 이번 부산시장 보궐선거는 추 장관이나 윤 총장을 심판하는 자리가 돼서도 안 된다. 지금 정치판이 이미 그렇게 돌아가고 있는 걸 어찌하겠냐고? 부산 유권자로선 딜레마일 수 있다. 하지만 좌고우면할 여지가 없다. 거듭 말하지만 이번 선거는 어디까지나 부산과 부산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부산시장’을 뽑는다는 게 그 본질이다. 그 외 다른 선택은 없다. kmyim@busan.com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