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비혼 출산 시대’ 오나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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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가족’은 없다… 달라진 ‘2030 가족관’ 국가적 지원을

비혼 출산에 관한 관심이 크게 늘고 있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법률상은 물론 현실적으로 비혼 출산은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대체적이다. 사진은 병원의 신생아실 모습. 연합뉴스 비혼 출산에 관한 관심이 크게 늘고 있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법률상은 물론 현실적으로 비혼 출산은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대체적이다. 사진은 병원의 신생아실 모습. 연합뉴스

최근 방송인 사유리 씨가 일본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에도 ‘비혼 출산’이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전통적으로 여겨오던 ‘결혼=출산’의 연계 고리에서 벗어나 결혼과 무관한 출산이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한지에 대한 논쟁부터 ‘정상 가족’이라는 용어의 내용과 성격까지 적잖은 화두를 던졌다. 특히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우리나라 현실에서 젊은 세대의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과 사회 여건의 변화는 비혼 출산 이슈를 더는 외면하기 어렵게 하고 있다.



방송인 사유리 씨 ‘비혼 출산’ 화제

젊은 세대 혼인·출산 인식 격변

미국·스웨덴·덴마크 등 인정 추세

국내선 생명윤리법상 사실상 금지

출산 ‘자기 결정권’ 논의해야 할 때


■결혼과 출산은 위험한 일이다?

전통적인 결혼과 출산에 관한 인식은 갈수록 변화의 양상이 뚜렷하다. 특히 결혼과 출산 적령기인 2030세대의 인식은 전통적인 그것과 엄청난 괴리감을 보인다. 이젠 거의 보편화하는 모습이다. 국내 각 기관의 조사 내용도 이 같은 추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KWDI)이 지난 10월 발간한 이슈페이퍼의 ‘청년세대 생애 전망에서의 남녀 차이’ 분석에 따르면 청년 여성들은 결혼과 자녀 갖기를 노동자로서 생존을 위협하는 ‘위험한 사건’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년기 삶의 과업 중요도 비중에서 여성과 남성 모두 ‘일’을 각각 36.2%, 35.9%로 가장 중요시했다. 이어 ‘개인 생활’을 각각 29.5%, 26.6%로 꼽았다. ‘자녀 갖기’는 네 항목 중 ‘파트너십’보다도 더 낮아 여성 12.6%, 남성 14.1%만 중요하다고 꼽았다. 일·직업을 유지하는 데 결혼이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응답도 여성은 50%에 달했다. 남성은 24.8%였다. 파트너(배우자)가 적극적으로 이러한 위험을 분담하지 않는다면 자녀 갖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선택지라고 여기고 있는 셈이다.

또 갈수록 결혼과 출산의 연계도 약해지고 있다. 통계청이 최근 13세 이상 남녀를 대상으로 조사한 ‘2020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는 응답은 30.7%로 2년 전보다 0.4%포인트 늘었다. 이 비율은 2012년 22.4%에서 2016년 24.2%로 조사 때마다 증가세이다. 비혼 출산에 대한 인식 변화는 다른 유사한 조사에서도 대체로 비슷하다.

가족 형태의 인식에서도 변화는 분명히 나타난다. 지난 5월 여성가족부 조사에서 국민 약 70%는 ‘혼인·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생계와 주거를 공유한다면 가족이 될 수 있다’라고 답해 이 역시 크게 변화했음을 보여줬다.

실제로 2019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가구 비중은 가장 흔할 것이라고 보통 생각하는 4인 가구는 16.2%로 가장 작았다. 1인 가구가 30.2%로 가장 많았으며, 이어 2, 3인 가구 순이었다. 가족의 구성과 형태가 다양화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방송인 사유리 씨 방송인 사유리 씨

결혼과 출산, 가족에 대한 국민 인식은 앞으로 더 다양하게 분화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사유리 씨처럼 비혼 출산의 법적, 현실적인 가능성은 어떨까. 현행법률상 불가능하다는 의견부터 명백한 금지 사항은 아니지만, 어쨌든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대체적이다. 법률을 떠나 의료 현장에서는 어렵다는 의견에는 일치했다.

정자 또는 난자의 기증과 이를 통한 체외수정 시술, 연구 등을 규정한 가장 기본적인 법률로는 ‘생명윤리법(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 꼽힌다. 이중 ‘배아의 생성 등에 관한 동의’를 규정한 제24조 1항이 핵심 조항이다. 여기엔 난자·정자 기증자, 체외수정 시술 대상자 및 해당 기증자·시술 대상자의 배우자가 있는 경우 서면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다만 배우자가 없을 경우는 언급이 없는데, 이를 근거로 비혼 여성의 정자 기증을 법률상 명백히 금지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법률상으로도 불가능하다는 반론도 있다. 부산에 본부를 둔 우리나라 유일의 정자은행인 한국공공정자은행연구원 박남철 이사장은 현실적으로는 물론 법률적으로도 비혼 여성이 정자를 기증받기는 어렵다고 단언한다.

박 이사장은 “생명윤리법 제24조 1항은 배우자가 없는 경우를 명시하지 않았다뿐이지, 실제로 생식 세포의 기증을 위해서는 법률로 정해진 동의서를 받아야 한다. 이 자체가 금지 요건 구실을 한다”며 “현장에서도 이를 무시하고 시술하려는 의사는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를 어기면 생명윤리법은 징역 2년 이하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규정한 강력한 벌칙 조항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법률은 물론 현실에서도 비혼 여성이 자기의 의사 결정에 따라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다.


■출산의 ‘자기 결정권’ 논의 확산 추세

자녀를 낳을 출산의 권리를 결혼한 부부뿐만이 아니라 비혼 여성에게도 인정해야 한다는 흐름은 국내에서도 감지된다. 젊은 층일수록 이런 경향은 두드러지지만, 아직 국내의 법과 제도는 이 부분에서 사실상 공백 상태에 가깝다. 사유리 씨의 출산을 계기로 정치권 등에서 국내에도 비혼 출산을 위한 법적·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실제 관련 법령의 개정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외국에서도 이 문제는 논란거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산의 자기 결정권을 인정하는 나라는 점차 늘고 있다.

미국은 3개 주를 제외하고 대체로 이를 규제하지 않고 있으며, 영국은 1990년 생명윤리와 관련된 법률 정비로 23~39세 비혼 여성에게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스웨덴도 2015년부터 42세 이하의 여성이 정자 기증으로 출산할 수 있는 길을 터놓았다.

덴마크는 출생하는 아기의 약 10% 정도가 인공 수정으로 태어날 만큼 비혼 출산에 관대한 나라로 알려져 있다. 일본도 법률로는 원칙적으로 금지하면서도, 각 병원의 윤리위원회 심의 결정에 따라 정자 기증을 통한 비혼 출산의 길을 열어 놓고 있다. 현재 논쟁 중인 프랑스는 상·하원을 오가며 관련 입법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

각국이 처한 상황은 다양하지만, 비혼 여성의 출산 권리에 대한 논의 자체가 활발해지고 있는 현상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나라 역시 전통 가족 개념의 해체 또는 분화와 심각한 저출산 시대를 고려하면 앞으로 이와 관련한 법률적·윤리적 논의부터 제도적인 지원 범위의 확대 등까지 다양한 이견과 조정을 피할 수는 없어 보인다. 특히 이는 다양한 가족 형태의 출현과 국민 인식의 변화 등 한국 사회의 구조 변동과도 맞물려 있는 만큼 지금부터라도 국가 차원의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남철 이사장은 “저출산이 심각한 우리나라의 상황을 고려하면 이제는 국가가 나서서 의학, 생명윤리, 법률, 인구 분야의 전문가까지 아우르는 출산에 관한 공적 네트워크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며 “출산을 통한 국민의 행복권과 건강권은 물론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도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쏟아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곽명섭 위원 kms01@busan.com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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