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없는 사람들 죽어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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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녕 경제부장

그야말로 없는 사람이 죽어나는 세상이다.

코로나 19로 다들 어렵지만 버티는 사람은 버틴다. 근데 여력이 부족한 이들은 이미 한계에 다다라 손을 들었거나 곧 한계점에 봉착하게 된다. 주위 곳곳에 나붙은 ‘임대 문의’ 표지가 자영업자의 피눈물 나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이 스산하다.

지난 총선을 앞두고 재난지원금만 나눠주면 사태가 해결될 것처럼 목소리를 높이던 정치인들은 어디 갔는가? 여권에서 서로 먼저 재난지원금을 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니 야당도 표를 얻기 위해 옳은지 그른지 판단은 뒤로 하고 ‘빨리’ ‘더’ 지원해야 한다며 가세했다.

자영업자·소기업 한계 봉착
서민 정책이 서민 더 어렵게
부동산정책 무주택자 ‘멘붕’
주52시간 작은 기업엔 타격
명분 옳아도 시행 신중해야
정치논리보다 실사구시 절실



그 돈은 다 어디로 갔나? 경제를 살리겠다며 뿌린 수조 원이 고작 수개 월의 효과도 없이 사라졌으니 그 행방이 도무지 궁금하다. 내년 1월 중 3차 재난지원금 지급이 검토 중이라고 한다. 사정이 급한 자영업자들을 생각하면 더 지원하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이번에도 ‘언 발에 오줌 누기’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정부 정책이 뭐가 맞는지 도통 모르겠다. 틀린 것 같지만 경제에 통달했다는 행정공무원이나 경제학자들이 맞다고 하니 국민들이야 그저 맞는가 하고 넘기게 된다.

문제는 ‘없는 자’들을 위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정부의 경제정책으로 인해 ‘없는 사람’들이 더 힘들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부동산 정책이다. 집값을 잡겠다며 시작한 정책이 집값을 폭등시키고 있다. “곧 잡겠다. 지켜봐달라”는 소리는 이미 여러번 들었다. 그 사이 집 한 채 없는 이들은 집값이 폭등하는 것을 지켜보며 '멘붕' 상태에 이르렀다. 집이 있고 없고에 따른 빈부 격차가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벌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서울 강남이나 부산 해운대 등 특정지역의 아파트만 부의 상징으로 여겨졌지만 이제 무주택자들에겐 아파트 가진 모든 이들이 ‘넘사벽’의 존재가 된 듯 하다. 일각에서는 현 정부가 부동산 부양정책을 편다고 대놓고 말은 못하고, 김현미 국토부 장관을 내세워 ‘암묵적으로’ 부동산을 부양시키며 경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수년 전에도 ‘주52시간’ ‘최저임금 인상’ 문제로 나라가 시끄러웠다. 현 정부 경제 정책이 가진 문제는 의도는 좋은데 결과가 좋지 못하다는 점이다. 더 문제는 결과가 좋지 못하면 제도를 보완해야 하지만 그러기 보다 더 밀어붙여 끝장을 보려한다는 점이다.

지난 주 중소기업단체협의회에서 주52시간 계도기간 종료에 따른 보완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주52시간은 당연히 필요한 제도다. 누구나 그 취지를 잘 알지만 주52시간이든 최저임금 인상이든 그 제도가 급격하게 시행이 되면서 부작용이 나오고 있다. 정부 정책을 반대하면 적폐로 몰 것이 아니라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 조금만 더 귀를 기울이면 ‘윈윈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난 9일 국회를 통과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역시 취지에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좋은 제도지만 이를 바로 시행하기 어려운 작은 기업들의 사정도 정치권이나 정부가 이해를 해주는게 정상적인 국정 운영 방식일 것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 아파트 경비원 임금 인상으로 큰 논란이 일었던 기억이 난다. 최저생계에도 미치지 못한 경비원 임금 인상이야 당연히 이뤄져야 했지만 임금 인상에만 초점이 맞춰져 제도가 시행되자 당시 많은 경비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현재 그나마 최저임금 적용이 정착된 것은 당시 일자리를 잃은 경비원들의 희생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시 그들은 경비원 월급보다 못한 임금을 받는 자리로 밀려나고 그 가족들은 더 큰 고통을 겪어야 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주 52시간의 시행,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역시 비슷한 느낌이 든다. 제도의 취지를 훼손시킬 의도는 없다. 잘 하겠다는 정책이 오히려 서민들의 눈물을 가져오지는 않을까 늘 생각해야 한다. 인기 위주의 정책은 입에는 다나 곧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힘을 가진 여당이 경제 정책 만큼은 야당과 싸운다고 생각하지 말고 서민의 실생활에 미칠 영향을 좀 더 세밀하게 살펴봐야 할 것이다.

경제는 정치가 아니다. 좌파 정책, 우파 정책이 따로 있을 수 없다. 서민들이 잘 살고, 안심할 수 있는 세상은 이데올로기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현실에 맞고 실리가 있어야 한다. 또한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서민의 희생과 고통을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해도 버티지만 없는 사람은 당장 오늘이 중요하다. 서민을 위한다는 구호에 그치는 정책이 아니라 실제로 '없는 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실사구시의 정책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jumpjump@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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