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 진중권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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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호 부산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대통령제하에서 정치 뉴스의 초점이 되는 인물은 대개 대통령이다. 시시콜콜한 뉴스도 많지만, 대통령이라는 자리의 중요성이나 영향력을 감안할 때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요새 언론의 정치 기사에서 그 자리를 대신 꿰차고 있는 인물이 있다. 바로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다. 그의 이름이 포털 사이트 상위 5개 뉴스 중 두 기사 제목에 등장한 날도 있다. 단지 기사에서 인용하는 수준이 아니라 그의 발언 자체가 독자적인 뉴스 꼭지가 되기도 한다. 이러니 진중권을 정치부 출입처로 따로 둬야 할 판이다. 나아가 언론은 진중권뿐 아니라 온갖 논객과 정치인의 험하고 날 선 독설을 유행처럼 받아 적고 있다. 바야흐로 ‘진중권 저널리즘’이라고 할 만한 보도 양식이 등장한 것 같다.

권위자·공인 발언 인용한 보도 관행
진중권 말 여과 없이 기사화해 문제
정치 혐오감·언론 불신 조장할 우려
팩트 확인 충실, 막장 보도 근절해야

진중권은 종종 광고 카피 같은 재치 있는 발언으로 인기 유튜버처럼 화제와 논란을 몰고 다닌다. 하지만 언론이 그의 발언을 여과 없이 기사화하는 것이 정상은 아니다. 진중권 따라잡기의 유행은 정치 보도가 이슈나 정치적 행위가 아니라 ‘튀는’ 발언만 좇는 선정적 관습이 모습만 바꿔 나타난 것이다. 이 유행은 한국 저널리즘의 위기 상황을 드러내는 병적 징후로 봐야 한다.

저널리즘에서 인용문은 오랫동안 직업 관행의 핵심이었다. 저널리즘은 팩트(사실)를 기반으로 진실의 조각을 추구한다. 하지만 언론인은 늘 간접적인 팩트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현실의 그림을 좀 더 입체적으로 파악하려면 누군가의 진술에 의존할 필요도 있다. 그래서 어떤 분야를 대표하는 권위자나 공인의 발언을 취재원으로 삼는 관행이 생겨났다. 여기에는 그만한 지위의 취재원이라면 발언에 공신력이 있을 것이라는 무언의 합의가 작용한다. 더구나 전문가나 공직자 등 공인은 자신의 발언에 책임을 져야 할 인물이고 실제로 현실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간주되기 때문에 인용부호 속 진술은 팩트에 버금가는 지위를 누렸다.

진중권 발언 받아쓰기식 저널리즘은 바로 이 출발점에 찬물을 끼얹는다. 우선 진중권은 공적이거나 대표성 있는 위치에 있는 인물이 아니다. 정치 분야에서 남들은 알 수 없는 독자적 정보에 접근권을 가진 인물도 아니다. 그렇다고 딱히 무슨 전문가라고 보기도 어렵다. 종편에 많이 나오는 시사평론가나 논객에 가까운 인물이다. 다른 공인과 달리 자신이 한 말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맞으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식이다. 무슨 사이비 예언자나 정체불명의 도사 같은 발언이 정치 뉴스에 적합한지도 의문이다.

더구나 취재원의 발언은 그 자체가 취재의 출발점이지 종점이 아니다. 인용부호를 붙였다고 해서 기자의 책임이 면제되진 않는다. 인용에 앞서 발언이 사실에 부합하는지, 다른 팩트와 상충하는 부분은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취재원이 이전에 한 발언과 일관성이 있는지, 맥락이 맞는지, 바뀌었다면 왜 바뀌었는지도 검토해야 한다. 이 모든 번잡한 후속 작업을 생략하고 자극적인 발언을 그대로 옮기는 건 저널리즘의 사망 선고나 마찬가지다. 기사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만으로는 타당성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어떤 황당한 주장이든 그대로 믿는 바보는 늘 있기 마련이다. 그것도 무더기로.

진중권 저널리즘의 유행은 언론 보도의 정파화와 흐름을 같이 한다. 정파적 논객의 거친 발언에는 무조건적인 박수와 야유가 동시에 뒤따른다. 현실은 복잡하고 다면적이어서 흑백논리로는 파악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진중권의 쾌도난마식 발언은 모든 복잡성을 생략하고 현실을 단순화해 사람들이 원하는 부분만 보게 하는 인지적 편향성을 조장한다. 정파화된 언론은 미리 정해진 답에 적합한 인물과 구미에 맞는 발언을 인용하는데, 진중권은 언론의 요구 사항에 딱 맞는 취재원인 셈이다. 이처럼 취재원을 이미 정해진 정파적 시각에 구색 맞추기식 인용으로 활용하는 것은 언론의 오랜 악습이다.

이 같은 보도의 또 다른 문제는 언론과 정치의 막장화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원색적이거나 강도 높은 발언이 넘쳐나다 보니 사려 깊고 균형 잡힌 발언을 하는 공인은 언론에서 외면을 당한다. 최근 정치인들의 무책임한 막말성 발언이 유독 잦다. 이는 언론 보도의 저질화와 무관하지 않다. 특히 우려되는 점은 이제 막 정치에 발을 들인 초선 의원들조차 막말 경쟁에 물들어 정치 혐오 조장에 매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막장 발언과 막장 보도는 코로나바이러스처럼 전염성이 강한 병폐다.

언론도 외부 여건의 변화에 적응하며 진화한다. 최근의 우려스러운 현상 역시 치열한 클릭 수 경쟁의 부산물로 본다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다고 해도 언론이 본분을 망각한다면 존재 이유가 없다. 진중권 따라하기는 바로 그 근거를 부정한다. 진중권 저널리즘을 버려야 언론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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