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비뚤어진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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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 사건의 핵심 인물 최서원 씨의 딸 정유라 씨가 2017년 5월 한국에 송환되던 때 얘기다. 당시 네티즌들의 관심은 온통 패션과 스타일로 향했다. “저 티셔츠 어디 거죠?” “한정판입니까?” 브랜드와 가격에 관한 패션 정보가 온라인을 도배했다. 그해 1월 덴마크 현지에서 체포될 때도 마찬가지였다. 입고 있던 회색 패딩의 브랜드와 가격대가 상세히 해부됐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비난의 대상이 된 인물의 패션을 대중이 모방하려는 이런 현상을 ‘블레임 룩’이라 한다. '비난(blame)'과 '패션 스타일(look)'이 합쳐진 말이다.

국내 블레임 룩의 역사는 1999년으로 거슬러 오른다. 탈주범 신창원이 검거될 당시 입고 있던 무지개 티셔츠를 빼놓을 수 없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의 모조품이었는데, 이를 앞다퉈 구입하려는 기이한 열풍이 번졌다. 2000년 무기 로비스트 린다 김이 검찰에 소환되면서 얼굴을 가리려고 착용한 선글라스도, 2007년 학력 위조 파문을 일으킨 신정아 씨가 국내 송환될 때 지닌 의상과 가방도 때아닌 인기를 끌었다. 모두가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고 한다. 올 3월에는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씨가 검찰에 송치되기 전 입고 있던 티셔츠가 세간에 회자되기도 했다.

최근 ‘블레임 룩’ 현상이 다시금 거론되고 있다. 아동 성폭행 혐의로 복역한 조두순 씨가 출소할 때 입은 상의 패딩이 주인공이다. 관련 검색어가 인터넷 포털사이트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1, 2위를 장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블레임 룩 관련 상품들은 대체로 인지도가 높아져 매출이 늘어난다. 하지만 해당 업체들은 상표가 드러나는 것 자체를 꺼릴 수밖에 없다. 사회적 비난 여론의 향배에 따라 직격탄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주빈 씨가 입은 의류의 경우 당시 매출이 늘었다고 한다. 조두순 씨가 입은 패딩은 매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학자들에 따르면, 블레임 룩은 비윤리적인 일을 저지른 사람에 대한 비난에 동참해 사회적 이슈를 형성하려는 전략과 관련 있다. 명품을 구매하는 이들과 이를 가능케 하는 사회 구조를 동시에 비판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부유층의 초고가품 구매 행태나 젊은이들의 무분별한 모방 행위가 이것으로 설명될 순 없다. 조주빈 씨와 조두순 씨의 경우, ‘안티히어로’이기는커녕 극악한 성범죄자일 뿐이다. 진짜 블레임 룩이라면 사태의 본질을 꿰뚫는 시선을 지녀야 하지 않을까.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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