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사평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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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순 소설가

중앙동 쪽에 볼일을 보고 오던 길이었다. 버스정류장으로 가려다 그냥 도로를 따라 걸어보기로 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라 그날이 그날이지만 해마다 세밑인 이맘때면 괜히 지난날을 돌아보게 된다. 한 해의 지나온 나날들은 반성 모드로 이끄는 게 희한하다. 올 한 해는 더욱 그렇다. 돌아보면 홍시 터지듯 회한이 물컹하게 터진다.

어머니께서 석 달 반가량 투병을 하시다가 시월 중순에 돌아가셨다. 코로나19 때문에 면회도 제대로 못했다. 그래서인지 어머니를 어디 공원이나 시장에 모시고 나갔다가 잃어버린 것만 같다. 다음 생에 다시 어머니를 만나고 싶고, 어머니의 볼과 손발을 실컷 비비고 주무르라는 생각들을 하다 보니 어느덧 부산역이 코앞이었다.

연말 회한이 홍시처럼 물컹 터져
작고한 어머니 생각 뻥 뚫린 마음
온 세상 나그네들이 모인 아! 그곳
내게 모든 역은 늘 ‘사평역’이었다
눈보라 멎고 막차 기다리는 그곳
우리는 지금 모두 사평역에 있어



이번에도 어김없이 역사(驛舍)에 적힌 ‘부산역’이라는 이름은 ‘사평역’으로 읽혔다. 오래 전에 곽재구 시인이 쓴 ‘사평역에서’라는 시를 읽은 뒤부터 내게 모든 역은 ‘사평역’이었다. ‘사평역’은 시인이 만든 역 이름이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역임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역보다 인상 깊은 역으로 남았다.

‘사평역에서’라는 시는 눈 내리는 겨울 밤, 사평역 대합실에서 막차를 기다리며 톱밥 난로 앞에 모여 든 나그네들을 그린 내용이다. 시에 등장하는 나그네들은 기차 시간을 기다리면서 시린 몸을 녹이고 손을 쬐며 저마다의 상념에 젖어 있다. 그들은 각자의 행색과 눈빛으로도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다 알아차릴 터였다.

굴비두름, 광주리 사과를 들고 청색 손바닥을 비비며 시린 유리창을 힐끗거리며 단풍잎 같은 몇 잎 차창이 있을 밤 열차를 기다리는 그들은 서로에게 물을 것도 답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귀향하는 기분으로’ ‘오래 앓은 기침’ ‘쓴 약 같은 입술담배연기’라는 시어들에서 그들은 파장을 늦게 끝낸 행상인이나 정처 없이 떠나는 나그네일 터였다. 그래서 ‘사평역’은 ‘대합실’로 읽히고 ‘대합실’은 ‘나그네’로 읽혔다.

이왕 역에서 멈춘 걸음, 대합실까지 들어가 보기로 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어묵가게 앞을 지나고, 편의점을 지나 대합실 안으로 쑥 들어갔다. 어디서 불어오는지 대합실에 바람이 불었다. 바람에 히터 열기가 실려 왔다. 코로나19로 발이 묶였다고 해도 대합실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들이 손과 등에 들고 진 짐들은 장을 펼치거나 떨이를 처분 못한 행상 물건처럼 보였다.

이제 대합실에는 그 예전의 사평역에 있던 톱밥난로 대신 텔레비전이 군데군데 놓여 있었다. 텔레비전 화면과 전광판시계를 번갈아 보는 사람, 가방을 닫았다 열었다 하는 사람, 스마트폰을 보면서 주위를 힐끗거리는 사람, 벤치에서 앉았다 일어났다 하면서 초조하게 대합실 입구 쪽을 보는 사람, 텔레비전과 등지고 돌아앉아 개찰구 쪽을 보고 있는 사람,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먼 곳을 보고 있는 사람 등, 모습은 달라도 그들은 대합실이라는 길 위에 선 이들이었다.

서울행 KTX 몇 호 열차가 곧 출발 예정이니 탑승 준비를 하라는 둥, 무슨 열차가 몇 분 연착하거나 곧 도착한다는 투의 안내 목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그런 소리 사이로 캐리어바퀴가 바닥을 할퀴는 소리가 들렸고, 구두굽이 바닥에 찍히는 소리도 또각또각 들렸다. 그 모든 소리들은 기차 바퀴가 철로에 구르는 소리처럼 육중하게 들렸다. 그때 아는 언니한테 전화가 왔다. 내가 어디 있느냐고 묻는 언니에게 나는 언니가 있는 그곳에 있다고 답했다.

우리는 모두 사평역에 있다. 사평역에서 눈보라가 멎고 막차가 오기를 기다리듯, 우리도 불안이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사평역 대합실에서 발을 동동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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