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2차 공공기관 이전 논의 서둘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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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열 경제부 금융팀장

“정부에 강력히 요청드립니다. 부산시가 진정한 금융 허브의 미래를 열기 위해선 산업은행, 기업은행, 수출입은행은 물론 한국투자공사, 한국벤처투자 등 서울에 소재하는 공공기관 본사 이전이 필수적입니다. 정부는 2차 공공기관 이전에 대해 논의를 서둘러 주십시오.”

어느 농성장에서 머리띠를 질끈 동여매고 대정부 항의에 나선 누군가의 발언 같다. 그러나 이 발언은 9일 부산시가 부산국제금융센터(BIFC)에 외국계 금융사 6곳을 유치했다는 ‘경사’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나온 말이다. 이날 변성완 부산시장 권한대행은 부산시청에서 열린 브리핑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잔칫날에도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현실, 이것이 국제금융도시를 꿈꾸는 부산의 현실이다.

‘금융중심지 부산’ 10년 넘게 지지부진
여당 “서울을 국제금융수도” 날벼락
‘2차 공공기관 이전’ 논의 다시 시작해
금융 공공기관 추가 부산 유치 이뤄야

2009년 1월 부산은 서울과 함께 한국의 금융중심지로 지정됐다. 이후 부산 문현동 문현금융단지에 2014년 부산국제금융센터(BIFC)가 준공됐고, 한국거래소·한국예탁결제원·한국주택공사·자산관리공사 등이 이곳에 자리 잡으며 외견상으로는 금융중심지 성장의 기반을 마련했다. 일자리 창출, 세수 확보 등의 효과도 나타났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부산은 부산을 금융중심지로 만듦으로써 부산 경제의 재도약을 모색하려 한다. 많은 금융기관이 집적되고 금융자본이 모여들면서 그 자본이 지역의 산업으로 흘러가 침체된 지역 경제가 살아나는 선순환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부산에 위치한 금융기관들로만은 이러한 기타 산업으로의 시너지 효과를 내기는 어렵다. 지역 기업에 대한 투자나 여신 기능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산이 산업은행이나 기업은행의 유치를 희망하는 이유다.

유감스럽게도 현실은 이러한 부산의 기대를 무색하게 할 정도다. 부산시가 정부에 2차 공공기관 이전에 대한 논의를 서둘러 달라고 간청한 바로 그날, 여당의 국가균형발전·행정수도추진단은 국가균형발전 전략으로 ‘권역별 메가시티’를 제안하며 “서울을 국제경제금융수도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국회의사당의 세종 이전으로 공백이 생기는 서울 여의도를 ‘글로벌 경제금융수도’로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여의도를 한시적 금융 특구로 만들고, 글로벌 금융인재 양성·유치, 외국인 정주 여건 개선 등 다양한 방안을 시행함으로써 홍콩의 금융허브 기능을 서울로 가져오겠다는 목표다.

그간 부산시는 ‘투 트랙’의 금융기관 유치전을 펼쳤다. 하나는 서울에 집중된 국내 금융기관, 금융사들을 부산으로 유치하겠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그와 별개로 해외로 눈을 돌려, 흔들리는 홍콩의 금융허브 기능을 부산으로 선점해오려는 노력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 여당의 발표로 이러한 부산시의 노력이 무산될 위기다. 이대로라면 가뜩이나 서울에 집중된 금융기관이 부산에 내려올 일은 더욱 요원해진다. 게다가 서울이 홍콩의 금융기업 유치전에 나설 경우, 부산이 서울을 이길 재간은 없다.

자본의 욕망은 솔직하다. 자본의 속성에는 ‘지역균형발전’과 같은 정의로움은 없다. 그저 효용성을 따라 움직일 뿐이다. 그러한 정의의 실현은 자본시장에 개입할 수 있는 정부의 의지로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현재 정부와 여당은 그런 의지가 없어 보인다. 오히려 서울에 금융 기능을 집적해 효용성을 추구하겠다는 생각뿐인 듯하다. 아니, 단지 효용성만이 아니다. 그 속에는 오히려 얕은 수의 정치적 속내도 엿보인다.

2018년 9월 이해찬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수도권의 122개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부산은 더 많은 금융 공공기관 이전을 통해 진정한 금융중심지로의 도약을 기대했지만 2차 공공기관 이전 계획은 올 초 총선이 끝나면서 아예 목소리를 감췄다. 그리고 내년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신공항 이야기만 부산을 뒤덮고 있다.

잠시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신공항 건설 계획은 이번 정부가, 그리고 지난 총선 당시 여당의 부산시장 후보가 부산시민들에게 이미 약속한 것이다. 그것을 마치 '새로운 선물'을 베풀듯 던져주며 "부산은 그걸로 만족하고, 금융 기능은 서울에 넘겨라"고 말하는 건가. 신공항이 선물이 아니듯, 부산의 금융중심지 기능 역시 신공항이라는 선물의 대가로 포기를 감수해야만 할 사안도 아니다. 정부와 여당, 그리고 야당 정치권은 선거용 '선물'이 아니라, 진정한 지역균형발전의 의지를 보여야 한다. 하루라도 빨리 2차 공공기관 이전에 대한 논의를 다시 시작하기를 바란다.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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